두 개의 육괴(陸塊)가 마주치는 곳에서 지진이 일어난다. 거대하고 뜨거웠던 80년대와 일상적이고 사소한 90년대가 깊은 심연을 남기고 단절됐다.
“80년대는 진지했다. 사건마다 이유와 결과가 뚜렷했다.”
1970년생 89학번인 작가 김연수의 말이다.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오니 세상이 변했다. 정치 사상서를 읽던 친구들은 뮤직 비디오와 게임에 빠져들었다.
모든 것이 우연적이고 사소하며 실체감을 잃고 있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나쁘지만은 않았다. 나름대로 새 세상을 즐기는 방법을 알게 됐다.”
94년 그는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를 썼고, 작가세계 문학상을 받았다.
데뷔 6년만에 그가 내놓은 첫 단편집 ‘스무살’은 두 시대 사이의 분열과 그 사이에서 빚어지는 ‘낯설음’을 기록한다.
사회 변혁을 일상의 구호로 외친 세대의 무거움과 무라카미 하루키를 베껴쓰며 문학 수업을 시작한 세대의 날렵함이 작품의 행간을 날줄과 씨줄로 엮는다.
단편 ‘뒈져버린 도플갱어’에서 주인공 승민은 잡지사의 청탁으로 ‘가장 90년대적인 공간’인 대학로를 카메라에 담는다. 처음 승민은 사진 속에 대학로의 모든 시공간을 담아보려 하지만, ‘80년대 노동자들의 행렬과 십대들의 오토바이가 같은 시간, 공간에 함께 존재할수 없는’것을 깨닫고, 사진 속에 담길 모든 피사체를 생명 없는 것으로 지워나가기로 마음먹는다.
‘구국의 꽃 성승경’에서 주인공 재민은 학창시절 열정을 바쳐 ‘열사’성승경의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성승경을 신성의 자리로 끌어올릴수록 인간으로서 성승경의 실재는 사라져간다. 그는 ‘어디에도 없는 여자를 찍느라 피 같은 필름을 죄다 써버렸다’고 화를 낸다.
작가는 어느 시대의 편인가. 그는 ‘구국의…’에서 90년대를 ‘죽은자들의 시대’라고 말한다. “너무나 개인이 무기력해졌다. 인간의 순수함은 경멸받고 있다. 인간의 희망을 논하는 대신 현란한 미디어의 폭격만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사라진 80년대를 재생시켜 순수를 얻어낼 수 있는가. 연작 중편 ‘죽지 않는 인간’에서 작가는 예수와 함께 죽지 못해 대신 세상의 병을 짊어져야 하는 ‘카르타필루스’를 등장시킨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한 생물 암모나이트도 언급된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결국 몰락의 운명을 맞는 것.
작가는 19일 열린 동아마라톤 하프코스에 도전했다. 2시간 20분이라는, 예상밖의 저조한 기록이 나왔지만 즐거웠다고 그는 말했다.
“마라톤은 소설쓰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준비과정이 대부분의 실체이고, 나온 결과는 ‘축하 케이크’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왜 ‘쓸데 없는 일’에 왜 힘과 시간을 버리느냐고 말하지만, 작은 일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90년대의 수확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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