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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현대그룹 누구것인가

입력 | 2000-03-26 19:57:00


현대그룹 인사파동이 10일만에 마무리되고 후계구도가 가시화됐다. 이익치(李益治)현대증권회장의 고려산업개발회장 전보인사로 촉발된 현대그룹 경영대권을 둘러싼 형제간 ‘후계다툼’은 일단 정몽헌(鄭夢憲)회장의 역전승으로 결판이 났다. 정몽구(鄭夢九)회장의 친위쿠데타는 정몽헌회장의 막판 뒤집기와 창업주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의 최종결심으로 ‘10일 천하’로 막을 내렸다. 이를 계기로 현대그룹의 5개 전문 소그룹 분할도 가속도가 붙게 됐다.

정몽구회장이 이번에 현대경영자협의회 공동회장직에서 물러남으로써 자동차부문은 그룹에서 사실상 분리되게 됐으며 중공업부문은 현대중공업 고문을 맡고 있는 정몽준(鄭夢準)의원에게 넘겨주는 쪽으로 이미 가닥이 잡혔다. 건설 전자 금융 및 서비스 등 3개 부문은 현대그룹의 법통을 이어가면서 2003년 또 다른 소그룹으로 독립하게 된다.

그렇다고 현대그룹의 후계구도가 완전히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정명예회장이 가문의 법통은 사실상 장남인 몽구회장에게 물려주고 현대그룹의 핵심 경영권은 5남인 몽헌회장에게 넘겨줌으로써 형제간의 갈등과 그룹내 내홍을 서둘러 봉합했지만 양자간 전면전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점에서 현대그룹의 분란은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서막일 수도 있다는 풀이도 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시각은 차갑다. 그도 그럴 것이 재벌개혁의 핵심은 기업경영의 투명성제고와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다. 그럼에도 이번 현대의 후계다툼과 최고경영자들에 대한 인사난맥은 아직도 한국의 재벌이 오너 독단의 ‘황제경영’, 혈연중심의 ‘가족경영’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로 인한 피해는 현대그룹만의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현대의 실질적인 주인인 수십만명에 이르는 주주와 종업원이 가장 큰 피해자다. 뿐만 아니라 국가신인도에 미치는 악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현대는 한국의 대표적 기업중 하나다. 그리고 결코 한 개인이나 가문의 기업일 수 없는 국민기업이다. 그같은 현대가 겉으로는 재벌체제를 해체한다면서 실제로는 형제간 후계싸움이나 벌이고 계열사 부당지원과 편법자금운영 그리고 주가조작 등 과거의 잘못된 경영행태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최근 현대 주가가 ‘반토막’나면서 소액주주들과 노조가 함께 울분을 터뜨리고 있는 것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현대 사태를 보면서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은 현대뿐만 아니라 모든 재벌들이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맞게 거듭날 때가 됐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