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거래소시장 활성화 대책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은 계속 침체의 늪으로 빠져가고 있다. 이러한 주식시장의 침체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미국 뉴욕증시의 조정, 시장에서의 수급상황 악화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침체의 기저에는 우리나라 투자자들의 잘못된 투자패턴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잘못된 투자패턴 시장침체 불러▼
뉴욕증시의 영향만 해도 그렇다. 최근 세계경제의 글로벌화가 진행됨에 따라 세계증시가 어느 정도 동조화 현상을 보여주고 있고 한국경제가 미국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주식시장의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시장의 움직임에 지나칠 정도로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 개인투자자, 기관투자가 할 것 없이 미국 증시상황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일희일비하고 있다.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보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 앨런 그린스펀 의장의 발언에 훨씬 더 신경을 쓰고 한국의 물가 금리 임금 지표보다 미국의 경제지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투자자들의 이러한 행태를 보고 있으면 마치 한국경제가 미국경제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역설적으로 외국인투자자들이 오히려 한국 경제의 독립성을 더 인정하고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에 따라 투자하고 있다고 보인다.
또 개인투자자들뿐만 아니라 꽤 많은 기관투자가들도 초단기 매매인 소위 데이 트레이딩 내지는 단타매매를 행하고 있다. 물론 주식시장에는 데이 트레이딩이나 단타매매를 하는 사람들도 필요하다. 이들이 시장에 어느 정도의 유동성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은 데이 트레이딩에 정신이 없고 기관투자가들도 단타매매에 몰두하고 있는 작금의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기업가치에 입각한 장기‘투자’를 외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따라서 집단심리에 의한 단기 뇌동매매가 판치는 ‘투기판’으로 변질되고 있는 한국주식시장은 조그만 악재에도 주가가 폭락하고 마는 것이다.
주식시장 침체의 또 하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시장의 수급상황 악화 또한 시장참여자 특히 기관투자가들의 잘못된 투자행태로부터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현재의 수급악화는 기관투자가들의 대규모 주식매도에서 비롯되고 있다. 작년에 설정되었던 여러 펀드들에 대한 환매가 일어나고 있지만 투신사에 신규자금이 유입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관투자가들이 환매자금 마련을 위해 가진 주식을 내다 팔고 있는 것이다. 그럼 왜 일반인들이 투신사에 더 이상 자금을 맡기는 것을 꺼릴까. 이는 투신사를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이 시장에서 신뢰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증권사가 투자자들에게 추천한 종목들은 평균적으로 추천 후 주가가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한 분석결과가 나왔다. 증권사가 추천한 종목을 매입한 평범한 투자자는 손해를 보고 증권사의 추천을 이용해 이 종목들을 매도한 사람은 이익을 본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증권사 추천을 이용해 주식을 판 사람들 중 상당수가 추천 증권사와 한통속인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증권사가 추천한 종목을 같은 그룹의 투신사나 자산운용사가 대량 매도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일반인들이 기관투자가들을 신뢰하고 자신의 귀중한 재산을 쉽게 맡기겠는가.
기업자금의 주요조달원인 증권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 투자자들의 성숙된 투자패턴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내재가치에 입각한 장기투자에서 결실을 볼 수 있고 기관투자가의 신뢰가 회복될 수 있는 투자환경을 만드는 정책당국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기관투자가들에 의한 데이트레이딩의 제한, 특정 그룹에 의한 자산운용사와 증권사의 동시소유 불허, 자격요건이 갖추어진 독립된 자산운용사의 설립 장려 등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빨리 올바른 투자패턴이 한국 주식시장에 자리잡아 주식시장이 기업들의 자금조달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투자로 인해 창출된 기업가치의 상승이 투자자에게로 환원되는 건전한 투자의 장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조명현(고려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