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안중근(安重根)의사를 적지 않은 일본인들이 흠모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재판정과 사형집행장에서 보인 의연한 모습을 전파시킨 당사자도 일본인 관헌들이었다. 이에 비하면 도리어 한국의 해외 독립운동가 중에 안의사의 의거와 같은 군사무력 투쟁을 비판하는 이가 있었다. ‘테러의 방법으로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안의사가 일본의 지도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했음에도 일본인의 존경을 받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안의사는 단순한 행동가일 뿐만 아니라 사상가였다. 그가 일본에 대해서 무작정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러일전쟁 때만 해도 그는 일본을 지지했다. 20세기초 당시의 세계정세에 대해 서양세력이 동양에 뻗쳐오고 있다고 보고 ‘동양민족이 단결해서 이를 물리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이 러일전쟁에 나서면서 동양평화를 지키고 한국독립을 공고히 하겠다고 선언하자 안의사는 그런 생각에서 일본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안의사가 항일 독립운동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일본이 을사조약을 강요한 이후였다. 1907년 연해주에 건너간 안의사는 의병을 규합해 본격적인 ‘독립전쟁’에 나선다. 이듬해 야링(亞領)지구군사령관으로 함북 경흥주둔 일본군 수비대와 싸워 큰 전과를 올렸다. 그는 이때 포로가 된 일본군 수십명을 막료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석방했다. “국제공법상 전쟁포로에 관한 대우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였다. 사상가 풍모가 아니고서는 내리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일본 재판정에서 안의사는 “대한의 의병으로서 독립전쟁을 했으니 이 법정에서 취조받을 의무가 없다”면서 전쟁포로로 대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토를 사살한 동기에 대해 ‘대한의 주권침탈’과 함께 ‘동양평화 교란행위’를 비판한 것도 그의 일관된 사상에서 나왔다. 안의사의 순국 90주년인 26일 공개된 자료는 그가 “한일이 협력해 동양평화를 도모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의 옥중저술인 ‘동양평화론’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그러나 거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이 한국과 만저우, 청나라에 대한 야욕을 버려야 한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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