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의 ‘체육관 인베이전(침공)’은 성공했다. 24, 25일 저녁 서울 올림픽공원 내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그의 ‘천년의 노래’ 콘서트에는 연 1만여 관객이 몰렸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젊은 가수들의 전유물이 돼 온 체육관 무대에 중년의 트로트가수가 홀로 섰고 중장년 관객을 끌어냈다. 공연장 주변에는 ‘경남’ ‘강원’으로 시작되는 자동차번호판을 단 관광버스와 승합차들이 눈에 띄었다.
“우 히히히” 또는 “으 흐흐흐!”
나훈아는 이번에도 특유의 ‘유치함의 매력’을 상품으로 들고 나왔다. 인상적인 웃음으로 중년의 귀를 아슬아슬하게 간질러댔다. 그는 최선을 다했고 목소리는 낭랑했다. 무대도 정성들여 꾸민 흔적이 역력했다. 관객은 질서정연했고 목소리와 몸짓 대신 박수로만 반응했다.
그의 체육관 무대 성공은 30여년간 트로트 분야 정상에 서 온 한 중견가수의 색다른 성취라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사회 문화적 의미가 컸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서의 공존’이 가능함을 증명했다. 그리고 특정 정서가 다른 정서를 ‘지배’할 수 없음도 보여 주었다.
1980년대 이후 중장년층은 대중음악에 관한 한 짙은 콤플렉스를 느껴왔다. 그들은 자녀가 부르는 댄스뮤직과 랩을 흉내내며 숨죽여 왔다. ‘멜로디는 간곳없고 비트로 쪼개지는 리듬만 나부끼는’ 대중음악의 숨가쁜 변화 속에 가는 세월을 야속해 하며…. 그들은 젊은이들의 눈을 피해 단란주점 등 ‘제한된 공간’에서 트로트 중심의 흘러간 노래를 불러왔다. TV에도 ‘가요무대’와 ‘전국노래자랑’ 정도가 있었으나 ‘아웃사이더’였다. 중장년층, 특히 ‘나훈아류’의 가요문화는 조PD의 음악처럼 ‘언더그라운드 문화’로 자리매김돼 왔다.
이번 콘서트는 그들이 밝은 ‘그라운드’로 나올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나훈아 자신이 도박을 감행했고 ‘나훈아류’의 정서도 개방된 공간으로 몰려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정서’를 가감없이 표출했다. 대신 집을 지키고 있을 자녀들이 뭐라든.
중장년층은 자신과 같은 정서,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정서적 동지’가 많음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한 50대 관객은 “쇼도 쇼지만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더 인상적이었다”고 표현했다.
미국의 어떤 석학이 21세기 ‘문명의 충돌’을 예상하자 독일의 군비축소전문가는 ‘문명의 공존’으로 맞섰다. 한국에서 중장년과 청소년의 정서는 ‘충돌’해 왔으며 그 갈등은 청소년이 압도하는 양상으로 전개돼 왔다. 나훈아의 ‘체육관 침공’은 같은 사회적 공간에 보기에 따라서는 이질적인 두 정서가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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