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경찰관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대학생 운전자를 집에까지 보내 돈을 가져오게 한 뒤 이를 받고 방면한 ‘황당한 비행’이 벌어졌다.
이는 경찰 수뇌부의 ‘부패와 비능률 척결’ 구호에도 불구하고 일선 경찰관들의 뇌물챙기기 관행이 심각한 상황임을 입증하는 것으로 충격적이다.
광주대 1년생 이모씨(20·휴학중)가 경찰의 음주단속에 적발된 것은 27일 오전 4시반경 서울 성북구 월곡동 대로에서였다. 경찰관 2명이 탄 서울30나88X3 순찰차의 단속에 걸린 것. 중학교 동창생들과 맥주를 마셨지만 시간이 꽤 지나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던 이씨는 자신있게 음주측정에 응했다. 그러나 결과는 음주운전. 차를 운전해야 한다며 사양했지만 막판에 한 잔 마신 게 화근이었다.
면허증과 자동차 열쇠를 압수한 경찰관은 이씨의 일행 3명에게 경찰서까지 동행할 것을 요구하며 순찰차에 태웠다. 그러나 경찰서로 가야 한다던 순찰차는 무슨 영문인지 속도를 내지않고 인도쪽으로 붙어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음주사실을 적발한 경찰관은 이씨 등에게 “음주가 확인되면 500만원 벌금에 면허정지”라며 은근히 ‘협박’했다. 겁이 덜컥 난 이씨는 “학생인데요,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라며 사정사정했지만 경찰관들은 싱긋 웃기만 할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함께 탔던 이씨의 동료 유모씨(21·호서대 1년)가 ‘상황을 파악했다’는 듯 경찰관에게 제의했다.
“아저씨, 식대라도 드릴게요. 좀 봐주세요.”
유씨의 말에 차량을 몰던 경찰관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야, 너는 이야기가 통하는구나.”
몰던 차를 골목길에 댄 경찰관은 유씨 등 3명에게 “호주머니를 전부 털어 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은 3000원이 전부.
그러자 운전석에 앉았던 경찰관이 유씨를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이 경관은 유씨에게 “대학생들이니 20만원에 눈감아 주겠다. 운전자 집이 이 부근이라니 집에 가서 돈을 가져 오라”고 요구했다.
함께 차를 탔던 안모씨(21·인덕대 1년·휴학중)가 ‘인질’로 남고 이씨와 유씨가 이씨의 집으로 달려가 30여분만에 20만원을 가져왔다.
그동안 음주운전에 대한 벌칙조항을 들이대며 겁을 주던 경찰관들은 골목길에서 10만원짜리 수표 2장을 건네받자 면허증과 열쇠를 돌려주며 “조심해서 가라. 집에 갈 때까지 사고 내면 안된다”며 차가 잘 빠져나가도록 교통통제까지 해줬다.
이씨는 “돈이 없는 대학생에게 집에 가서 돈을 가져오라고 해 20만원을 받아갈 정도니 경찰비행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고 말했다.
서울 종암경찰서 김강자(金康子)서장은 “현재 청문감사관이 뇌물수수 여부를 조사중”이라며 “조사 결과 수뢰사실이 확인되면 해당 경찰관을 파면조치하고 형사처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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