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프로 제작진들은 저질 논쟁이나 소비성 해외촬영이라는 지적을 비껴가기 위한 ‘명분’을 만들곤 한다. 특히 가족시청 시간대인 일요일 저녁 오락프로의 경우, 이는 롱런 여부를 좌우하기도 한다. KBS2의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의 ‘출발 드림팀’ 코너는 스포츠를 소재로 “결과에 승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라는 제법 설득력있는 타이틀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이경규가 간다’ 등을 앞세워 수 년 간 ‘양심이 살아있는 사회’라는 담론을 끄짚어내 캠페인성 오락프로의 장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SBS가 주력 주말 오락프로로 밀고 있는 ‘로드쇼 힘나는 일요일’(일 오후6·00)은 상당 부분 ‘억지 춘향식’ 명분을 앞세우고 있어 오히려 오락프로 특유의 웃음을 갉아먹는다는 지적이다.
신설 코너인 ‘영어 대탐험’을 보자. SBS의 인기 시트콤인 ‘순풍 산부인과’에 출연 중인 아역 탤런트 미달이(김성은)와 정배(이민호)를 호주로 한 달간 ‘파견’해 그곳의 관습과 올해 열릴 시드니 올림픽의 준비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26일 방송분은 단지 이들의 눈을 빌려 호주의 볼거리를 소개하는 그저그런 ‘관광 안내’에 그치고 말았다. 4월2일 방송분을 예고하면서 이들이 인터넷 화상전화로 한국에 있는 엄마와 통화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리는 장면을 내보내 제작진의 의도가 오히려 ‘유아 마케팅’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코너의 마지막에 미달이가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 기쁘다”고 한 말은 공허할 수 밖에 없었다.
개그 듀오 ‘클놈’의 일본 문화 체험기를 보여주겠다는 ‘뭔가를 보여드리겠습니다’는 남희석을 스타덤에 올린 SBS ‘좋은 친구들’의 ‘비교체험 극과 극’을 변형했다. 하지만 코너는 그저 이들의 좌충우돌식 해프닝을 보여주고, 그날 제대로 체험을 소화하지 못한 사람의 이마에 날계란 세례를 퍼붓는 것이 전부였다.
오히려 ‘로드쇼…’의 나머지 코너인 ‘청기백기홍록기’나 ‘사랑의 이름으로’는 일종의 ‘무념(無念)개그’지만 억지 웃음은 아니다. KBS와 MBC에 비해 ‘공영성’에서 자유로운 SBS가 어줍잖은 명분으로 웃음의 농도를 떨어뜨리는 이유를 알 수 없다.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