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첫 여성대통령 타르야 할로넨(57)은 지금 법적으로 독신이다. 그는 혼외관계에서 낳은 안나라는 딸을 두고 있으며, 현재도 결혼하지 않은채 동거중이다.
우리사회에서 이혼은 일종의 실패로 여겨진다. 특히 이혼한 여성은 같은 경험을 한 남성보다 굽이굽이 힘든 길을 걸어야 한다. 이 속에서 엄마와 딸은 어떻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아이에게 미안해요▼
이혼의 이유는 많다. 이유야 어떻든 파경을 겪은 엄마는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매월 첫째주 토요일 ‘새로 짓는 우리집을 위한 한부모 교실’을 열고 있는 한국여성민우회 유경희사무국장은 “사별과 달리 이혼인 경우 엄마들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아이에게 더욱 집착하게 된다”고 전한다.
4살 3살 자매를 둔 주부 왕은영씨(29·서울 마포구 도화동)는 마주앉은 어린 딸들에게서 25년전 엄마와 자신의 모습을 본다고 했다. 왕씨의 엄마는 그가 초등학교 5학년때 이혼당했고, 대학생때 재혼했다. “지금보다 몇배 힘들었던 세상 속에서 엄마는 살아가야할 이유를 만들어가며 꿋꿋이 견뎌오셨겠구나.”
그러나 엄마는 아직도 이혼의 원인이었던 ‘아들’이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왕씨를 안타깝게 한다. “남편, 아이들과 함께 세배하러 간 자리에서 엄마가 그러더라구요. 새해엔 아들 하나 낳으라고.”
▼준비 안된 사회▼
사업을 하는 강혜진씨(42·가명·서울 동작구 사당동)는 이혼녀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아이의 고통이 이 정도인줄 알았으면 이혼을 재고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고2짜리 딸아이는 흔히 말하는 문제아예요. 27세 이혼녀가 혼자 아이를 데리고 살기에 이 세상은 너무 팍팍했어요.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자 학교에선 소위 ‘가정환경’에 주목하더군요. 전 아이가 이렇게 된 것은 부모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아이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선 ‘할일이 너무 많다. 전학시키라’고 해요.”
일년전 이혼한 첫딸을 위로하는기 위해 ‘산자를 위한 굿판’이란 시집을 낸 이근숙씨(52)는 “20년전 이혼한 나를 두고 ‘그런 여자의 딸은 안돼’라는 시집의 반대로 막내딸은 7년간 고통받았습니다. 이혼으로 마음을 다친 여자에게 또한번 돌을 던져요. 내 딸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분들 역시 편견의 피해자예요”라고 말한다.
▼엄마, 재혼해요▼
‘한부모’가족에서 딸은 아들보다 더 큰 부담을 느끼며 부모의 재혼에 적극적이 된다. 같은 여자로서 엄마의 행복을 위해, 또 ‘엄마의 손’을 필요로 하는 가족전체의 생활을 위해.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If)’의 박미라편집장(36)은 7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자신에게 헌신적인 엄마가 부담스러웠다고 말한다.
“혼자 사는 여자를 세상은 너무 쉽게 공격했어요. 한밤중에 깨보면 엄마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저를 업고 방안을 서성거리곤 했지요. 엄마가 부담스러워 초등학교 5학년땐가 ‘엄마, 새아빠 말 잘들을게 재혼해’하고 졸랐어요.”
제약회사에 다니는회사원 남소라씨(33·가명·서울 서초구 서초동)는 고3때 세상을 뜬 엄마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듬해 재혼하는 아빠를 말리지 않았다.
“아빠가 재혼하지 않으면 결국 집안일은 첫딸인 내 몫이었겠죠. 하지만 진정으로 새엄마를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새로짓는 우리집▼
남씨는 아빠의 성공적인 재혼생활엔 새엄마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남씨는 새엄마를 1년간 ‘아줌마’라고 불렀으나 새엄마는 아무말 없이 뒷바라지했다.
“남동생이 먼저 새엄마를 어머니라고 불렀어요. 새엄마에게 감사하지만 같은 여자로서 이렇게까지 희생해야하나 싶어요. 이젠 가족들 뒷바라지에 매달리지 말고 다른 행복을 찾아보라고 부추기지요.”
그렇다면 이혼이든 재혼이든, 젊든 늙든 ‘엄마라는 사람’은 가족을 위한 밑거름으로, ‘거룩한 희생’의 삶을 살아야만 할까.
‘세상의 모든 딸들은 어머니가 된다’의 저자 알렉산드라 스타더트는 “아니다”고 말한다. 어머니의 진정한 역할은 희생이 아니라 자녀의 영원한 친구가 되는 것이라는 주장. “어머니 스스로의 삶을 알차게 살아가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는 얘기다.
어느 한쪽의 희생이 담보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행복이, 그리고 딸의 행복이 서로의 기쁨을 더해주는 삶. 엄마와 딸의 세계에도 상생(相生)의 아침은 열리고 있다.
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