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개혁의 밑그림은 대부분 합숙(合宿)하며 그렸다.’
다음달 1일로 출범 2주년을 맞는 금융감독위원회.
재벌들의 이익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여의도회관 바로 옆에 본부건물을 뒀지만 구조조정의 고비 때마다 호텔 등을 전전해야 했다. ‘보안이 생명’이었기 때문이다. 설립 2개월뒤인 98년 6월. 부실 은행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기에 앞서 금감위는 외부전문가들로 ‘경영평가위원회’를 만들었다. 은행들이 낸 경영정상화계획의 타당성을 분석하기 위한 것. 인천의 한국은행 연수원내에 은밀하게 거처를 구하고 2주동안 합숙토록 했다.
그러나 살생부를 발표하기 수일전 갑자기 방송사 카메라가 들이닥쳤다. 최종 인터뷰차 이곳을 찾은 자민련 이인구의원(당시 퇴출대상이었던 충청은행의 대주주 자격)을 카메라가 쫓아왔던 것. 장소가 노출되자 정치권의 외압시비가 일었다. 자민련 지원으로 관계에 복귀했던 이헌재 당시 금감위원장은 지방은행 퇴출을 놓고 무척 고민했다고 한다. 연원영 상임위원은 “때마침 청와대에서 ‘소신껏 결정하라’는 메시지가 전달돼 결국 자구계획이 뒤떨어진 충청은행이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8월 투신권의 대우채 환매위기도 호텔 합숙으로 해결했다. 당시 캠프는 마포의 홀리데이인 호텔. 환매대책을 책임진 이용근 당시 부위원장이 여의도 본부를 지키는 동안 대책반은 업계 협의를 거쳐 50∼95%의 환매비율을 확정한다. 여의도 본부는 당장 투자금을 찾을 길이 없는 고객들의 항의전화로 업무가 마비됐지만 호텔 작업반은 매일 새벽 2시까지 시장동향을 챙길 수 있었다. 11월 금융대란설 때에는 여의도 맨해턴 호텔이 캠프. 재경부와 신경전을 벌인 공적자금 추정액도 보안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금융권 부실규모를 추정한 금감위 보고서가 언론에 새나가 ‘금융권 부실 100조’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된 것.
위원장의 불호령으로 유출경로를 확인한 결과 성업공사(현 자산관리공사)에서 파견나온 직원이 ‘범인’으로 지목됐다. 성업공사 직원은 그후 징계를 받았지만 금감위는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국민에 대한 충격을 줄이는 데 일조한 셈”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98년 6월 기업구조조정협약을 만들 때 이위원장과 서근우 기업구조개혁심의관은 영국 중앙은행 출신 구조조정 전문가를 초빙, ‘한수’ 배웠다. 서심의관은 “영국 중앙은행은 구조조정 관련, 서류 1장을 남기지 않았다”며 “금감위가 ‘서류작업’에 의존했다면 단기간에 이만한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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