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처럼 관능적인 춤도 드물 것이다. 상대의 동공에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상대의 날숨이 자신의 들숨이 되는 탱고는 어쩌면 두 육체의 합일을 욕망하는 춤일지 모른다.
인체의 요철이 퍼즐처럼 끼워 맞춰지는 듯하다가는 어느새 상대의 몸을 휘감아 훑어내리는 팔과 다리의 동작은 보는 이의 잠재된 욕정까지 지펴 올린다.
영화의 소재나 정서를 두고 볼 때 진정한 스페인 감독이랄 수 있는 카를로스 사우라는‘탱고'란 춤과 음악을 통해 인간의 애욕과 부도덕한 권력의 야만성을 그린다.
5분의 3 이상을 춤으로 채운 이 영화는 극중의 뮤지컬 영화 한 편이 완성되는 과정 속에서 펼쳐지는 2인무, 3인무, 군무 등 다양한 탱고 형식을 보여주는데 그 춤이야말로 인물의 내면과 영화의 메시지를 부각시켜 나가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5분의 3이상 춤으로 가득▼
탱고 무용수인 아내 라우라(세실리아 나로바)에게 버림받은 중년의 영화감독 마리오(미구엘 앙헬 솔라)가 투자자의 간섭에 굴복하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 가면서 신인 배우 엘레나(미아 마에스트로)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단순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이야기 사이에 춤이 끼어 드는 여느 댄스 무비와 달리 춤 사이에 이야기가 녹아 드는 방식에 있다.
꿈 속에서 마리오가 다른 남자와 춤을 추는 아내 라우라를 칼로 찌르는 도입부의 춤은 아내에게 버림받은 마리오의 분노를,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엘레나가 기타 선율에 맞춰 추는 춤은 새로운 사랑에 눈뜨는 마리오의 희열을, 무용감독과 라우라와 엘레나가 함께 하는 3인무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여자의 심상을 표현한다.
▼역사에 대한 반성 촉구 '5월광주'연상▼
이런 춤 장면은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의 카메라를 거쳐 화려하게 피어난다. 빨강 파랑 노랑의 원색 조명, 정교하게 설계한 배경 세트 속에서 펼쳐지는 발랄하면서도 끈적끈적한 춤은 간혹 다중노출과 거울 속에서 일그러진 이미지로 왜곡됨으로써 등장인물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인상적인 것은 아르헨티나의 초기 이민사를 그린 군무다. 군인들이 민중을 학살하고 매장하는 모습을 춤으로 보여주는 이 장면은 극중에서 마리오가 목격한 참상을 재현한 것인데 그것은 어릴 때 스페인 내전을 겪은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 자신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5월 광주'를 연상케 하는 이 장면은 반복되는 역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사우라의 육성일 텐데 초기 낭만주의 화가 고야의 작품‘1808년 5월 3일'에서 모티브를 끌어들인 것이다. 무장하지 않은 스페인 민중을 학살하는 나폴레옹 군대의 만행을 사실적으로 그린 이 작품이 춤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98년 칸영화제 기술공헌상 수상▼
1998년 칸 영화제 기술 공헌상을 수상한 는 이야기보다는 몸의 언어인 춤으로 말하려다 보니 더러 의식 과잉과 까칠까칠한 직설법이 거슬리기도 한다. 특히 마리오에게 엘레나를 빼앗긴 남자의 상황과 대사를, 극 초반에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긴 마리오의 그것으로 똑같이 반복하는 것으로 서사의 앙상함을 가리려 한 것은 오히려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화려한 영상으로 탱고의 백과사전을 만들어 내고, 거기다 묵직한 주제의식까지 담아내려는 시도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댄스무비다.
김태수(film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