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훈(34)은 공연을 앞두고 초조했다. 2년만의 대형무대. 그것도 세종문화회관에서 이틀간 네 차례씩이나. 총 객석만 해도 1만4000여석. 이틀 동안 그 자리를 모두 채운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새 음반(7집)을 낸 지도 불과 보름.
1일 뚜껑이 열리자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팬들은 작은 손짓하나에도 “신승훈! 신승훈!”을 연호했다. 수백개의 형광막대기들이 실내를 휘젓는 광경은 ‘H.O.T.’의 공연과 다를 게 없었다. 첫 회에는 세 시간을 넘기는 바람에 공연을 그만 끝내라고 종용하는 세종문화회관측과 마찰도 빚었다. 객석의 환호는 2일 마지막 공연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객석은 20대 성인 여성 팬이 가장 많았다. 10대는 20%가 안됐고, 20∼30대 남성도 군데군데 있었지만 친구나 연인인 20대 여성의 손에 끌려온 듯 보였다. 그러나 20대 여성들은 한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보이지 않는 사랑’ 등의 노래는 처음부터 아예 따라 불렀고, 손 흔들고 함성 지르는 것은 10대와 다를 바 없었다.
20대 여성팬들은 신승훈을 잘 안다. 10년 전 신승훈이 데뷔했을 때부터 추종해왔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 대중 음악을 통해 자기 발언을 하기 시작했던 신세대의 원조인 이들은 한편으로는 틀에 박힌 제도권 교육을 비판한 서태지에게, 다른 한편으로는 맑고 소녀적 감성을 대변해온 신승훈에게 갈채를 보내며 자신을 표현해왔다.
신승훈은 새 음반과 공연에서 그런 음악적 코드를 더욱 원숙하게 내놓았다. 공연 때 대형화면을 통해 보여준 머릿곡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의 뮤직 비디오에는 짙푸른 바다, 아름다운 자태의 인어, 바다를 향해 떠나려는 소년 등의 화면이 이어진다. 그의 음악은 이같이 순수한 꿈이 지배한다.
공연장에 온 팬들은 그의 변함없는 음악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한승수씨(26·여·회사원)는 “일상에 배인 땟물을 순수한 소녀 때의 감성으로 말끔하게 씻어낸 기분”이라고 말했다. 김진영씨(26·여·학원강사)는 “10년간 신승훈은 부족한 부분을 우직하게 채워나가고 있어 신뢰감이 간다”고 평했다.
특히 20대 팬들은 스타를 선택하는데 냉정하다. 10대와 달리 스타를 맹목적으로 좇지 않는다. 그만큼 영화나 가요 등 대중문화계에서 이들이 갖는 권력은 크다.
신승훈이 이처럼 성인 ‘문화 유권자’에게 여전히 어필하는 이유는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다는 점. 음반과 공연의 완성도를 위해 치밀한 계산은 할지언정 ‘사기’를 치지는 않는다. 신승훈은 “10년간 내 노래를 들어온 팬들에게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번 공연에 쓴 돈은 3억여원. 그는 직접 무대 제작에도 참여해 공연에 대한 그의 철학을 느끼게 했다. 사랑과 이별이라는 통속적 내용의 그의 노래가 순수함이 깃든 세련미를 갖는 이유도 그의 이런 고집 때문이다.
이번 공연으로 신승훈은 10대 소녀 취향을 벗어나 국내 성인 음악을 이끄는 선두 주자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냉정한 잣대를 가진 성인 ‘문화 유권자’들이 그의 음악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는 “팬들의 짧은 박수는 쓰러질 때까지 노래하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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