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싫어요. 아빠는 제가 조금만 잘못을 해도 무섭게 야단을 쳐요. 때리기도 해요. 그럴 땐 엄마도 말리질 않아요. 아빠는 엄해야 한대요.”
K군은 아버지에게 심하게 야단을 맞은후 집을 뛰쳐나왔다. 그러나 갈 곳이 없어 이곳 저곳을 배회하다가 지나는 여학생을 발견하고 칼을 휘둘렀다.
한때 빗나간 10대들을 상담하다 보면 아버지는 엄부(嚴父)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엄부 망상이 지나친 행동을 가져오는 사례가 많다. 아마도 엄부자모(嚴父慈母)라는 고정관념이나 프로이트식 성관(性觀)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엄부자모란 중세시대의 수직적 부자(父子)관과 남녀차별 풍조의 산물일 뿐이다. 그 당시에는 모든 것에 위 아래가 엄격하게 설정되어 있었다. 군사부(君師父)는 일체로서 위에 존재하였고 신제자(臣弟子)는 모두 아래에 위치했다.
따라서 부자관계에서도 부는 위에 있으므로 항상 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부와 모의 남녀 차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수직적 사고는 근대 이후 이미 큰 도전에 부닥쳐 왔다. 자유 민주 분배의 사고가 넓어지면서 수평적 사고의 공격이 시작된 지 오래다. 그리고 지금은 이런 사고들이 혼재되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시대라고 평가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본래 부모와 자녀사이의 기본원리는 부자자효(父慈子孝)다. 부모는 자애롭고 자녀는 효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녀가 수직적 상하관게 속에서도 일방적 지시나 복종이 아니라 수평적 상호존중을 통해 서로 ‘사랑’으로 교감되어야 한다.
내리사랑(慈)과 치사랑(孝)의 쌍방향적 교류가 그것이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를 지도할 때는 따뜻한 사랑, 즉 자(慈)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 여기에는 부와 모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굳이 표현하자면 자부자모(慈父慈母)가 된다.
자(慈)가 효(孝)에 대칭되는 기본덕목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엄(嚴)은 무엇인가. 자(慈)를 바탕으로 한 지도 기법 중의 하나로 보면 될 것이다.
또 부모 중 누구도 엄할 때는 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자녀들이 원하는 아버지는 무서운 아버지가 아니다.
따뜻한 아버지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사회엔 이처럼 혼란스러운 자녀교육이 많다. 동서양의 차이, 과거와 현대의 차이 등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정교육의 방향을 정립하는 일이 시급하다. ‘신가정교육운동 2000’‘이달의 가정교육운동’ 등이 이같은 가정교육의 혼란을 잘 극복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강 지 원(청소년보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