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지음/삼인
국이 어떻게 유라시아의 체스판 위에 존재하는 지정 전략적 행위자들을 ‘조종’하고 ‘순응’시키느냐 하는 것과 어떻게 유라시아의 주요한 지정학적 축들을 ‘관리’하느냐 하는 것은 미국의 세계 일등적 지위의 지속과 안정에 매우 중요하다.”
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국가안보담당 특별보좌관으로 카터 행정부의 외교 정책을 담당했던 저자가 이 책(원제목 The Grand Chessboard)에서 펼치는 미국 중심적 국제정치의 관점은 ‘오만’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한국인의 입장은 도외시한 채 남북통일문제를 미국과 중국이 신경전을 벌이는 체스판의 ‘졸’로 취급하는 데 이르면 한반도 거주민으로서 ‘분노’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지 그 방법과 자세를 깊이 들여다보고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천착해 보라”는 옮긴이 김명섭교수(한신대 국제관계학과)의 말에 유의하며 책장을 넘겨보면 적지않은 수확을 얻을 수 있다.
“미국의 세계권력은 국내적 경험을 반영한 미국의 구도에 따라 구축된 세계체제를 통해 행사되고 있다. 그와 같은 국내적 경험의 중심에는 미국 사회와 미국 정치체제의 다양성이 자리잡고 있다.”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를 거쳐 현재 존스 홉킨스대 교수로 국제정치 연구와 정책자문을 하고 있는 72세의 이 실무경험이 풍부한 원로교수는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국제질서를 좌우할 수 있는 원동력을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아닌 ‘미국 내부에서 훈련된 민주주의적 정치 역량’에서 찾는다. 러시아나 중국, 심지어는 일본까지도 궁극적으로 미국을 대신할 세계 강국이 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 정치적 역량에 있다는 것이다.
체스판을 바라보듯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그가 제안하는 21세기 미국의 세계전략은 세계정치사와 국제정치학의 탄탄한 연구성과 및 행정부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서유럽에서 한반도와 일본에 이르는 유라시아는 로마, 몽고, 중국, 영국 등의 제국을 거치며 수백년 동안 세계를 지배해 왔지만 지금까지 어떤 제국도 군사 경제 기술 문화라는 네 가지 면에서 미국처럼 결정적인 힘을 가진 적은 없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미국이 일등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의 복지와 안보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자유, 민주주의, 개방 경제 그리고 국제 질서에 핵심적인 일”이라는 하버드대 새뮤얼 헌팅턴교수의 ‘자만심’ 가득한 말에 “지극히 온당하다”고 동의한다.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브레진스키의 기본구도는 지정학적 전략에 따라 유라시아를 안정적인 세력 구도로 안배해 미국이 맡고 있는 ‘세계경찰’로서의 역할을 분담시키고 미국이 ‘수렴청정’을 한다는 것이다. 유럽 통합의 범위를 점차 개방 확대해 러시아를 끌어들이고, 세계강국을 꿈꾸는 중국을 경계하며, 아시아권의 반발에 부딪혀 있는 일본을 국제적인 지도국가로 유도한다는 등의 전략이다.
그러나 97년 미국에서 이 책이 발간된 후에도 세계 정세의 급속한 변화를 계속하고 있다. 브레진스키의 예상과 달리 중국은 90년대부터 지금까지 빠른 경제발전과 함께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가상공간의 확대를 통한 정치 경제 전반의 변화도 그가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다. 김명섭 옮김, 291쪽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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