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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윤계섭]금융환경 악화 미리 대비를

입력 | 2000-04-08 19:23:00


영국시인 T S 엘리엇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황무지’에서 노래했다. 우리가 사계절 중에 희망의 계절이라고 부르는 봄을 그는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새 천년 새봄을 잔인하다고 하기에는 정말 어울리지 않지만 긴 봄 가뭄 속에 황사 현상과 구제역의 발병으로 금년 봄은 잔인하다기보다는 비참할 지경이다.

외환위기라는 긴 겨울이 끝나고 새봄이 오는가 하지만 국내외 금융시장 여건은 ‘봄은 오되 봄이 아니로다’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유명한 헤지펀드의 주역 타이거펀드가 정리 가능성을 비치고 다른 헤지펀드들의 손실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각국 증권시장이 급등락하고 있어 전문가조차 예견하기 어려운 현상이 지속되고 있으며 중요 통화간 환율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열렸던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서울포럼에서 참석자들은 헤지펀드와 단기이동 자금을 규제하고 공동 감시시스템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당장 구체적인 방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지난번 외환위기에서 헤지펀드의 부정적인 역할을 정책 당국자들이 인식했다는데 의미가 있고 간접규제가 미흡하다면 아예 직접규제를 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말레이시아에서 이미 행한 국제자본 통제를 인정하는 셈이다. 외환위기를 겪었고 외채가 많은 우리나라로서는 이들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해야 할 뿐만 아니라 환율 금리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에 대비하여 국제공조 체제의 안전망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미국 증권시장의 폭락을 경계했는데 이는 유럽의 경제학자들이 2년전부터 우려한 상황을 미국에서도 논의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세계적 공황이 미국 증권시장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우려는 정말 기우로 끝나야 하지만 미국경제가 활발한 소비와 신경제 가설을 기반으로 한 지식산업의 급격한 성장에 따라 증권시장의 거품에 대한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미국으로서 해외 자본유입이 중단되거나 유출로 바뀔 경우 심각한 위기가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어젯밤 미국증권시장의 주가변화에 연동해서 움직이는 우리 증권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대단할 것이다.

일본은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8년간 민간 소비가 침체하고 있고, 아직 경제성장이 회복될 조짐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미국경제에 대한 우려는 엔화가치의 급등으로 연결될 수 있고 이는 우리 수출의 호재로 인식되지만 일본 원자재 수입에 기반을 둔 수출구조와 저리 일본자금에 의존한 외채구조로서는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를 숫자상으로 극복하고 있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산업구조 조정에 따른 실업의 증가는 아직 해소되지 않았고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사회적 불안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경기회복을 빌미로 우리나라에 대한 통상마찰을 강화할 조짐이다. 자동차 시장개방을 중심으로 대폭적인 수입시장의 개방요구는 빈부격차에 신음하는 서민들에게 상대적인 빈곤감을 더할 것이다. 수년간 조용하던 노사간 갈등이 재연되어 금년 춘계투쟁은 대단히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의 재무담당자들은 이달에 주주배당과 법인세, 부가가치세와 다음달에 종합소득세 자금까지 마련해야 한다. 4월은 1년 열두달중 연말 못지않게 자금부족을 걱정하는 달로서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달이다.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 보아야 알겠지만 선거 후로 미뤄두었던 금융구조조정이나 각종 개혁도 시작될 것이다. 영국 시인이 말한 잔인한 4월은 영국의 이야기일 뿐이고 우리에게는 희망의 4월로 바뀌어야 한다. 정권 재창출이이라는 지상목표를 추구하는 정치논리에 가려진 경제논리를 되찾아야 할 때이다. 국민은 혼란한 정치보다는 안정된 삶을, 선진국이라는 허영보다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윤계섭(서울대 경영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