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 ㈜효성 고문 문도상씨(65) 부부 피살사건에 이어 8일 오후 부산 동래구 온천3동에서 DCM철강 회장 정진태씨(76) 부부가 살해되는 잔혹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해 경찰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두 사건 모두 범행동기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피살 현장상황을 보면 두 사건의 연관성을 의심할 정도로 살해현장이 너무나 끔찍하고 범행 대상이 부유층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피해자가 60대와 70대의 고령으로 반항할 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흉기로 여러 차례 찔리는 등 참혹하게 살해돼 범인의 정체와 범행 동기가 주목되고 있다.
당시 문씨는 목부위에 2차례, 부인 천시자씨는 목부위에 6차례나 칼로 깊이 찔렸고 현장은 피해자들이 흘린 피로 흥건했다. 정씨 부부도 예리한 흉기에 목과 배부위를 2∼6차례 찔려 집안에는 피냄새가 진동했다.
경찰 수사관계자는 “과거엔 원한관계에 의한 범행을 제외하곤 금품만 빼앗아 가거나 피해자가 반항을 하더라도 상처만 입혔을 뿐 살인에까지 이르는 경우는 조직폭력배 말고는 드물었다”며 “최근 발생한 두 노인부부 살해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잔인하게 살해해 수사관들도 놀랄 정도”라고 말했다.
이같은 범죄의 잔혹성은 10대 범죄에까지 퍼지고 있다.
지난달 18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여중생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최모군(15)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중생 피해자가 반항흔적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범인의 목을 깊숙이 찔러 숨지게 했다. 지난해 7월7일 전남 목포에선 15세의 김모군이 인터넷을 통해 본 일본 폭력물을 모방, 길 가던 초등학생 등을 흉기로 찔러 중태에 빠지게 했다.
범죄전문가들은 최근 증오형 범죄가 급증하면서 잔혹화되는 경향에 대해 현대인들이 인터넷 게임이나 비디오 영화를 통해 일상적으로 폭력에 노출되는 점에 주목한다.
이런 상태에서 재정곤란이나 가정불화 등을 겪으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잔인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범죄심리학자들의 분석이다.
여기에 마음먹은 일은 즉각 행동에 옮기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문화에 익숙한 요즘 젊은 세대들의 충동 성향이 한몫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금전관계 때문에 벌어진 면식범들의 범죄는 범인들이 피해자들의 경제사정을 잘 알고 있어 피해자들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금품을 빼앗지 못할 경우 피해자에 대한 증오감까지 생겨 잔혹성이 더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찰은 설명하고 있다.
최근엔 주식투자와 벤처사업 등으로 주변에 벼락부자가 속출하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이 과정에서 확산되는 ‘나만 당한다’는 왕따심리가 증오형 범죄를 조장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4일 패션 디자이너 김봉남씨(앙드레 김·65) 의상실에 권총 1정과 실탄 9발을 보내면서 “2억9000만원을 보내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구속된 김모씨(34) 등 3명도 대표적인 증오형 범죄.
김씨 등은 경찰에서 “옷로비사건 청문회를 보면서 앙드레 김 옷이 수천만원에 거래되는 것을 보고 지방에서 옷가게를 하는 형수는 몇만원짜리 옷을 파는데 너무 허탈해 앙드레 김을 범행 대상으로 점찍었다”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신경정신과 마음과마음 정혜신원장은 “한쪽에서는 벼락부자가 나오고, 벤처엑소더스다 뭐다 하면서 가만히 직장에 잘 있는 사람도 무능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IMF 구조조정으로 실직된 40대들이 새로운 직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상대적 심리적 박탈감이 사회 전체의 안정성을 흔들고 있는 것이 요즘 세태”라며 “나는 무능한 인간이고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자신감에 대한 상처는 무기력 좌절 침울 증세에서 나중에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바뀌어 공격적인 행동이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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