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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재단 남북정상회담 특별좌담]"냉전종식 계기로"

입력 | 2000-04-10 19:43:00


《동아일보와 21세기평화재단(이사장 권오기·權五琦전통일부총리)은 10일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따른 파장과 향후 남북관계를 점검하는'21세기 평화재단 남북포럼'을 개최했다. 동아일보 광화문사옥 12층 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포럼에는 사회를 맡은 권오기평화재단이사장, 김학준(金學俊·인천대총장)평화재단이사, 이종석(李鍾奭)세종연구소남북한관계연구실장등이 참석했다》

▽권이사장〓남북정상회담은 언젠가는 열리게 마련이었고, 다만 ‘시점이 언제냐’가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총선 직전에 발표가 돼 여러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이사〓우선 21세기 첫 해에 분단사상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돼 기쁘게 생각합니다. 사실 2차대전 종결과 더불어 유럽과 아시아에는 분단국가가 여러 군데에서 나타났지만 분단이 해소됐어요. 남북정상회담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의 ‘외로운 섬’으로 남아있는 한반도에서도 냉전구도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실장〓94년에도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됐었지만 당시는 북한의 핵문제로 인해 고조된 긴장상황을 풀기 위해 미국의 카터 전대통령이 중재해 성사됐었어요. 그래서 일회성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은 남북한이 자주적으로 합의에 도달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권이사장〓흔히 정상회담을 통해 실무차원에서 준비해온 사안을 마무리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양측이 절박하게 대결할 때에는 뭔가를 ‘시작하는’ 정상회담도 필요하지요. 이스라엘이 아랍과 싸웠을 때 양측은 정상회담을 통해 일단 말로써 대결구도를 풀었습니다. 저는 남북관계가 동서독보다는, 전쟁을 겪은 만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관계를 생각하곤 합니다.

▽김이사〓91, 92년도에 총리회담을 8차례 가져 웬만한 현안은 다 제기됐고, 남북기본합의서에는 더 이상 담을 게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마무리됐습니다. 94년에도 실무접촉이 있었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 합의사항은 아직 쌍방이 파기하지 않은 만큼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새로운 합의가 필요 없어요. 이번에 남북정상이 만나 합의내용을 하나 둘씩 실행해 나가자고 합의해도 엄청난 진전입니다.

▽권이사장〓이번 정상회담 합의서를 보면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고, ‘7·4’공동성명에 대해서만 언급했습니다. 우리가 남북기본합의서에 합의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우리나 저쪽이나 윗분이 결정하면 일사불란하게 가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정상이 만나서 새 출발을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김이사〓합의서를 보면서 ‘7·4’공동성명을 다시 대하는 느낌이에요. 우선 ‘상부의 뜻을 받들어’ 등 굳이 따지자면 북한식 표현이 나옵니다. 또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당시에는 쌍방이 서로 국호를 사용했지만 이번 합의서에는 국호가 나오지 않고 ‘남측’ ‘북측’이란 말을 썼어요. 카운터파트도 우리는 문화관광부장관이고, 저쪽은 국가나 정부의 공식부서라고 보기에는 힘든 아태평화위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 합의를 평가하는데 인색할 필요는 없겠지요.

▽이실장〓국호 문제는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이란 표현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봅니다. 박지원문화부장관이 담당한 것도 보안문제와 함께 현 정부의 실세라는 점도 감안됐겠지요. 특히 98년 9월 김정일국방위원장 체제가 공식출범한 이후 그가 최초로 만나는 국가수반이 중국의 장쩌민국가주석도 아니고 김대통령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권이사장〓정상회담까지는 시간이 남아있는데 앞으로 정상회담에서 어떤 의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십니까.

▽김이사〓분단 이후 정상간 첫 만남이기 때문에 저는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인 의제를 놓고 심도 있는 토론이 이뤄지기보다는 상징성에 더 비중을 둡니다.

▽이실장〓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사실 자체가 한반도에서 그만큼 군사적 긴장이 완화된다는 의미입니다. 정치 군사분야는 원론적인 언급이 있을 것이고, 경제교류와 이산가족문제는 좀더 구체적인 얘기가 나올 것으로 봅니다. 경제는 서로 이익이 되면서 투자할 수 있는 분야부터 시작이 되지 않겠습니까. 94년 김일성전주석은 사망하기 전에 담화를 통해 신의주 단동에서 서울까지 철도(경의선)를 복선화하면 북한에 4억달러의 이익이 올 수 있다고 밝힌 적이 있어요.

▽권이사장〓우리에게 북한은 ‘적’이자, ‘동포’입니다.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적’이 됐고, 시간이 흐르면서 ‘동포’의 의미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도 혁명을 하려는 부서가 있기 때문에 갑자기 잠수함이 내려올 수 있어요. 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경제와 관련, 현재 북한에는 돈이 없다고 말하지만 굿윌(good will)을 가지는 게 필요합니다.

▽이실장〓남북관계는 현실로서 ‘적’이라는 문제와 당위로서 ‘형제’라는 문제를 조화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군사문제는 정전체제와 미국문제까지 걸려 있어 북한이 하루아침에 풀지 않을 것이지만 저는 이 문제 또한 일단은 건드려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적어도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계기가 도출돼야 해요.

▽김이사〓한반도 상황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력충돌을 피하고, 남북한 공통의 이익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실장〓이 시점에서 북한이 왜 회담을 받아들였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당국자회담이라도 좋다는 입장이었는데 저쪽은 정상회담을 바로 들고 나왔습니다. 이를 종합해보면 북한에서도 인식에 있어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우리가 평화와 상생의 길에 대한 확신만 준다면 이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는 더 확실해질 수 있겠지요. 현재 ‘페리 프로세스’가 진행 중입니다. 이는 한반도문제가 국제화된다는 의미인데, 이처럼 정치협상이 필요한 시점에서 정상회담이 열리게 돼 다행입니다.

▽김이사〓여기서 우리는 유훈통치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김일성전주석은 죽기 전 한반도 문제를 미국의 협력 속에서 풀겠다는 점을 마련해 놓았어요. 또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본인 스스로가 남북정상회담을 받아들였습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처음에는 국내상황이 어려워 과감히 나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조기붕괴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판단하고, 체제유지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것입니다. ‘국민의 정부’가 대북포용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한 것도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 한 이유라고 볼 수 있지요.

▽권이사장〓북한을 자주 내왕하는 북한전문가로부터 들은 얘긴데 전에는 북한에서 ‘우리식으로’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이제는 ‘우리도’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반도 문제는 국제문제이기도 한데 주변국가들이 총론적으로 통일에는 찬성하지만 들어가 보면 그렇지 않기도 한데 어떻습니까.

▽김이사〓한반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4강이 모두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해온 점이 중요합니다. 이같은 지지를 유도해낸 것은 또 현 정부의 외교적 업적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4강이 남북통일까지 지지하느냐는 또 하나의 토론대상입니다. 그러나 남북한이 긴장완화를 하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치하려는 것을 주변국가들이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실장〓평화정착까지 가는 데에는 포용정책이 대단한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논란이 많지만 외국에 가보면 이를 느낄 수 있어요. 유럽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북한에 남북관계를 개선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중국의 장쩌민국가주석도 북한 김영남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을 만나 서방과 남한과의 관계를 개선할 것을 요구한 사실이 인민일보에 보도됐습니다.

▽권이사장〓사실 우리는 평화와 통일을 같은 것으로 묶어 생각하지만 때때로 상충하기도 합니다. 북한은 유엔에 가입하기 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면 분단이 고착화되기 때문에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김이사〓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입니다. 저는 남북상황을 영국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영국이 북아일랜드를 무력으로 통일시켰으나, 300년이 지난 지금도 폭탄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흡수 지배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교류와 협력을 통해 그런 감정들이 사그라져야 합니다.

▽이실장〓사실 평화가 없는 통일은 불가능합니다. 서로가 격렬히 대립하는 분단상황에서는 평화공존이 목표가 돼야 합니다.

▽권이사장〓평화와 통일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정상회담도 마찬가지예요. 남북관계에서 겨울이 올 때도, 여름이 올 때도 있습니다. 시간의 변화에도 맞출 수 있는 슬기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발휘돼야 합니다.

▽김이사〓남북정상회담 개최를 큰 흐름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노파심에서 덧붙인다면 혹시라도 남북정상회담이 국내정치에서 정략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정부 여당 야당 모두가 경계해야 합니다. 김대통령도 이를 민족적 차원에서 다뤄야 합니다.

▽이실장〓이제 정상회담개최에 합의했다는 것이지 아직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고, 북한도 마찬가지로 행동해야 합니다. 시민사회와 언론도 정상회담이 민족간 합의를 도출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국방이나 안보태세에 대한 더욱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겠지요. 경제협력도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한도에서 해야지, 국민세금이 들어가는 지원은 남북관계가 훨씬 진전된 상황에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권이사장〓선거로 모두가 들떠있을 때 이같은 합의가 발표돼 혹시 정치적인 고려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너무 눈앞에 있는 것만 보지 않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북한과의 관계는 위험이 많습니다. 총론이 아무리 좋아도 각론은 위험할 때가 많습니다.

▽김이사〓맞습니다. 흥분하지 않는, 실용주의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감상주의적 민족주의적인 자세는 좋지 않아요. 우리 실력을 감안하면서 경제협력을 추진해야 합니다.

i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