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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장승기증 조각가 이범형씨 "한국의 얼과 문화 전파"

입력 | 2000-04-10 19:43:00


“험상궂은 듯하지만 정감이 넘치는 표정인 장승은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담은 한국인의 얼굴입니다. 이정표 구실을 하거나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해온 장승을 통해 우리 민중의 얼과 문화를 유럽에 알리겠습니다.”

장승조각가 이범형씨(45)는 ‘장승 전도사’다. 1998년 9월 프랑스 디종 세계민속축제에 초청되면서 유럽과 인연을 맺은 이씨는 유럽 곳곳에 장승을 만들어 공원이나 광장에 세워왔다.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그저 좋아 며칠 밤을 새워 깎아내 지방자치단체 등에 기증한 장승이 20여개.

지금까지 프랑스 디종에 4개, 지리학축제가 열린 프랑스 발랑스에 6개, 이탈리아 피렌체에 4개, 룩셈부르크에 2개를 기증했다. 최근에는 프랑스 사업가의 주선으로 오를레앙 숲속에 높이 5m의 커다란 장승 4개를 세웠다. 파리 한국문화원 입구의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76년 도로공사에 입사했으나 중학생 때부터 염원하던 장승 만들기의 꿈을 버리지 못해 1년반 만에 사직하고 독학으로 장승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유럽 어느 곳이든 장승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만 있으면 달려가겠다”고 말했다. 지난해말 폭풍우로 프랑스에서 2백만그루의 큰 나무가 쓰러졌을 때 속으로 좋아했을 정도. 비싼 운임을 물고 한국에서 나무를 공수하지 않아도 장승 재료를 구할 수 있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씨는 강원 춘천시 남사면 강촌 근처에 8000평의 땅을 구해 이달 말 장승박물관을 개관할 꿈에 부풀어 있다. 20년 동안 자신이 만든 장승 500여점과 수집한 민속공예품 1500점을 전시할 곳이기 때문이다.

clai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