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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남북정상회담에 거는 기대

입력 | 2000-04-10 19:44:00


서울과 평양에서 어제 동시에 발표한 오는 6월의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 그것은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남북한 55년 분단사에 일대 전환점을 마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그동안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를 촉구해 온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갈길이 먼 것 같다. 양측 합의문을 보면 남북한은 곧 준비접촉을 통해 정상회담절차문제를 협의한다고 했으나 그 핵이 될 의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북측 송호경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접촉을 했던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남북한 정상간에 이산가족문제와 경협문제 등에 대한 폭넓은 의견교환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성’발언만 했다. 구체적인 의제는 준비접촉이나 실무회담에서 논의될 것이라는 게 정부측 설명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북한 관계를 보면 당국간회담의 대부분은 의제문제가 걸림돌이 됐다. 북한측은 남북한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주한미군철수 국가보안법철폐 등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최근 독일을 방문했던 북한의 백남순(白南淳)외상도 그같은 전제조건을 다시 확인했다. 북한이 이번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도 그 전제조건을 또 들고 나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을 할 것인가. 특히 양측이 합의문에서 재확인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7·4공동성명의 3대원칙도 북한측은 주한미군철수를 전제로 한 ‘자주’와 ‘평화통일’, 매년 평양에서 개최하고 있는 정당단체연합회의 등을 통한 ‘민족대단결’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합의문의 형식 역시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아태평화위 송부위원장이 사실상 대남(對南)관계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정부는 그동안 아태평화위를 북한의 당국이 아닌 민간단체로 규정해 왔다. 합의문에 아무리 ‘상부의 뜻을 받들어’라는 표현이 있다해도 그런 단체의 부위원장이 나선 것은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격’으로는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 특히 우리측이 발표한 합의문에는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다고 되어 있으나 북한측은 남측이 방북요청을 해와 허락했다는 식의 발표를 했다.

합의문 발표시점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정부측은 한마디로 북한측이 하자는 대로 따라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총선을 코앞에 둔 민감한 시기다. 북한측도 이번 발표가 총선에 미칠 영향을 여러모로 분석했을 것이다. 이같은 정황 때문에 야당측에서는 ‘총선국면 전환용’ ‘신(新)북풍전략의 극치’라고 혹평한다. 남북정상회담이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추진되려면 정부는 지금과 같은 의구심과 불신의 여지부터 없애야 한다.

정상회담이 민족사적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우선 남이건 북이건 신의를 지켜야 한다. 신의가 없는 남북한 관계는 허공의 누각일 뿐이다. 서로가 민족의 먼 장래를 내다보며 약속한 바 책임을 다해야 그같은 신의가 쌓일 것이다.

이미 본보는 80주년 창간사설에서 민족의 화합과 평화를 강조하고 본사가 남과 북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을 자임했으며 이를 위해 21세기평화재단과 평화연구소를 창립한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에 합의한 남북정상회담이 빈틈없는 준비로 차질없이 진행돼 민족의 화해와 공존 공영의 발판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