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리(倫理) 21' 가라타니 고진 지음/해본샤 펴냄▼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의 주도적 문예평론가의 한 사람이다. 가라타니의 첫 출발은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문예평론가였는데 차차 철학, 사상사로 분야를 넓혀, 지금은 문예평론 뿐만 아니라 여러 영역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가라타니의 시점과 방법론은 그 대상이 다방면에 걸쳐 있는 것과는 달리, 언제나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즉, 문학이든 철학이든 간에 특정 영역의 내부에서 암암리에 자명한 전제로 여겨지고 있는 개념이나 틀 등에 틈을 내어 인습적인 퍼스펙티브(시각)의 전복을 시도하는 것이다.
2월에 간행된 ‘린리(倫理)21’은 가라타니가 지금까지 다루지 않던 ‘윤리’ ‘자유’ ‘책임’ 등의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책이다. 지금까지의 가라타니를 아는 사람이라면, 왜 하필 그가 ‘윤리’에 대해 언급했는지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이 의아함을 이해하려면, 먼저 일본의 지적 풍토의 문맥을 읽을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흔히 ‘윤리’라고 할 때에는, 보수적이고 우익적인 입장에 선 사람들이 국가와 사회의 기성질서를 고수하기 위한 방파제로 끄집어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기존의 질서를 비판하는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그동안 ‘윤리’ 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하기가 대단히 껄끄러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근대적 주체 지우기’를 목표로 했던 구조주의도 이같은 분위기를 조장하는 데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주체’ ‘윤리’는 이른바 탈구축(脫構築)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 ‘종군위안부 논쟁’을 계기로 전쟁책임 문제가 사회의 큰 이슈로 부각되면서, 사회비판 세력쪽에서도 ‘윤리’‘책임’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요즘 일본사회가 잔인하고 비참한 사건에 종종 직면하면서도 ‘왜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가’라는 물음에조차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자명성이 붕괴되어 버리고 만 것도, 윤리라든가 책임 등에 대해 시급한 답을 요하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퍼스팩티브 전복’이라는 가라타니의 시점은 변함이 없다. 가라타니는 칸트의 자유론과 책임론에 의거하면서 종래의 자유 책임 공공성의 개념을 뒤집으려고 한다. 가라타니에 의하면 칸트는 국가입장에 선 것이 ‘사(私)적’이며, 개인이 모든 국가 규제에서 벗어나서 생각하는 것을 ‘공(公)적’이라고 보았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칸트는 ‘퍼블릭이라는 개념의 전복’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가라타니는 ‘국민’이 아니라 ‘세계시민’의 입장에 섰을 때에만 참된 의미에서의 윤리 자유 책임을 논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가라타니는 칸트의 논의에서 사회주의의 요소를 끌어 내어, 칸트와 마르크스를 잇는 선을 찾아 내려 했다. 한 걸음 나아가, 가라타니는 마르크스가 생각했었던 ‘가능한 코뮤니즘’의 재생을 시도했다. 가라타니가 말하는 ‘코뮤니즘’이란, 엥겔스나 레닌이 생각했던 것과 같은 생산의 국유화, 일당독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의 연합사회’에 의한 ‘개체적(個體的) 소유의 재건’을 의미한다.
이연숙(일본 히토츠바시대학교수·사회언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