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서 저의 족보(?)는 다소 기형적입니다.
1985년 영화배우를 시작했기 때문에 15년 경력이라는, 제 나이 서른 다섯 살 치고는, 짧지 않은 시간을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좋아하는 문성근 형님이 저보다 인생의 선배이신데도 불구하고 영화로서는 수 년 후배이셔서 가끔 “제가 선밴데요…”라고 ‘우스개 섞인 진담’을 할 때도 있습니다. 또 톱스타 한석규씨는 저와 비슷한 연배인데도 불구하고 제가 영화쪽으로 10년 정도 빠른 편이라 역시 만날 때마다 장난스레 농을 걸기도 합니다.
영화도 30편 넘게 찍었으니(물론, 선배님들에게 비하면 경력 축에도 못들지만)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그리 짧은 경력은 아닐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반 관객은 실물을 본 뒤에는 어려 보인다는 말씀들을 많이 해 주십니다.
▼경륜 불구 현장서 소외 안타까워▼
영화계에서는 위의 대 선배님들과의 자리에도 비록, 말석일지언정 겨우 낄 수 있는 처지가 되었고, 젊은 영화인들과도 격의없이 지낼수 있어 선배님, 후배님 양쪽의 이야기를 늘 듣게 되는 편입니다.
한국영화 관객의 90%이상이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으로 편중되어 있다는 우려되는 통계도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지금 우리 영화를 만들고 있는 영화인들조차도 대부분 20, 30대인 것이 사실입니다. 자연 선배님들의 작업 참여 기회가 적어지고 경륜과 식견이 훌륭하신 영화계의 어른들이 현장에서 소외되고 있는 모습은 관객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우리 영화계의 안타까운 ‘그림자’입니다. 자연 선후배간 대화의 장과 시간이 줄어들고 심지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채 다른 일을 하는 사람처럼 지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묵묵히 걸어온 길 "바꿔"는 잘못▼
영화 ‘우나기’로 칸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저명한 일본의 원로 영화인 이마무라 쇼헤이감독이 2년전 ‘간장선생’이라는 새 작품으로 손녀 뻘쯤 되는 여배우와 함께 두손을 꼭 잡고 부산 국제영화제를 찾았던 모습은 보기에도 참 근사하고 멋있는 기억이었습니다. 또한, 이제는 체력이 안되어서 얼마전 은퇴한 왕년의 최고 프로레슬러 김일선생님의 은퇴식에서 뜨거운 존경의 박수를 보내던 후배 레슬러들의 모습과 촉촉해진 김일 선생님의 눈가는 흐뭇함을 넘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김일 선생님이 후배 레슬러에게 박치기의 원리를 가슴으로 설명해주고 후배는 선배의 교훈을 이마로 ‘실천’한다면 이야말로 ‘완벽의 조화’가 아닐까요?
손기정 선생님이 안 계셨더라면 황영조 선수가, 최루 가스에 울먹이던 시절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민주 시대가, 아날로그 시대가 없었더라면 디지털 혁명이 과연 나올 수 있었을까요 ? 일선을 떠났다는 쓸쓸함보다 선배님들을 더 외롭게 하는 것은 선배님들이 걸어오신 오랜 길을 “무조건 바꿔”라는 이름을 빌어 하루 아침에, 송두리째 부정하려는 것 아닐까요?
이제, 한길을 오랜시간 묵묵하게 걸어오신 선배님들께 진정으로 감사의 박수를 보내며, 제가 만일 음악 카페의 DJ라면 프랭크 시내트라의 ‘My Way’를 띄워 드리고 싶습니다.
“어린 아이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내가 걸어왔던 길입니다.
노인 너무 무시하지 마십시오. 내가 갈 길입니다.”
박중훈joonghoon@serome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