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14일 뉴욕 증시 대폭락의 여파로 세계 각국의 증시가 일제히 동반 폭락하는데도 불구하고 사태를 관망할 뿐 아직은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로렌스 서머스 미 재무장관은 16일 ABC방송, 폭스TV 등과의 회견을 통해 “미국 경제의 토대가 견실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인플레가 발생할 우려는 없다”고 강조했으나 향후 주가동향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이에 앞서 15일 서방선진7개국(G7) 재무장관회담이 끝난 뒤 “재무장관회의에서 최근의 주가동향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나 초점은 시장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가 경제의 토대를 강화하는 데 있었다”고 밝혀 증시에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워싱턴에 있는 한국경제연구소(KEI)의 피터 베크 국장은 16일 “미국 정부는 현재 주가가 실제가치보다 지나치게 고평가됐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일본 증시 등의 동반폭락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을 지켜볼 뿐 증시에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미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도 “미국 정부는 차제에 주가가 어느 정도 내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고 있다”며 “미국 증시 하락이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증시부양책을 쓰거나 국제적인 협력을 모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정부는 1987년 10월의 주가 대폭락(블랙 먼데이) 때도 증시에 개입하지 않았다. 정부의 시장개입은 자칫 시장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주가 동향은 시장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미국 정부로서는 증시에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이 금리조정밖에 없으나 현단계에선 인플레 우려 때문에 금리를 올려야 할 상황이기 때문에 증시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추기는 어려운 실정. 따라서 사실상 증시를 부추길 수단이 마땅치 않은 셈. 이런 가운데 월가에서는 주가가 더 하락할 경우 증권회사에 일정액의 증거금을 맡기고 신용거래로 주식투자를 해 온 상당수의 투자자들이 이른바 ‘깡통계좌’를 갖게 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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