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가….”
미국 증시의 대폭락 여파로 17일 종합주가지수와 코스닥지수가 개장과 동시에 사상 초유의 낙폭을 기록하자 각 증권사의 객장에는 투자자들의 비명과 긴 한숨만이 가득했다.
특히 두 지수가 ‘끝없는 동반추락’을 보이면서 이날 오전 한때 거래소시장에서 전 종목에 대한 거래가 일시중지되는 ‘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s) 조치가 내려지자 투자자들은 “국내 증시가 이대로 붕괴하는 것 아니냐”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D증권사 본점의 객장. 시세판 앞에 몰려든 10여명의 투자자들은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발을 구르며 직원들에게 하소연하는 등 ‘블랙먼데이’의 공포에 전전긍긍했다.
객장을 찾은 주부 김모씨(45·서울 영등포구 대림동)는 “남편 퇴직금 2000만원을 투자한 금융관련 전 종목이 ‘반토막’이 돼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망연자실했다.
또 다른 투자자 박모씨(57·서울 관악구 신림동)는 “수년간 투자해 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전세금 일부를 빼내 투자한 우량종목까지 하락세를 면치 못해 막막할 따름”이라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같은 시간 인근 S증권사 객장도 사정은 마찬가지. 대부분 종목의 걷잡을 수 없는 하락세로 온통 시퍼렇게 ‘멍든’ 시세판을 바라보는 20여명 투자자들의 얼굴에는 침통한 표정뿐이었다.
50대의 한 투자자는 “지난해 1000만원을 날린 뒤 본전 생각에 최근 3000만원을 재투자했는데 이젠 ‘알거지’가 돼버렸다”며 울상을 지었다.
점심시간을 맞아 객장을 찾은 직장인들도 컴퓨터모니터 앞에 삼삼오오 모여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은 주가에 낙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직장인 이모씨(34)는 “며칠전 동료의 조언으로 인터넷 관련기업에 500만원을 투자했는데 다 날리게 생겼다” “그동안 ‘거품논쟁’이 일던 코스닥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며 연신 줄담배만 피웠다.
서울 중구 명동 H증권사 직원 박모씨(32)는 “하루종일 투자자들로부터 ‘어떡하면 좋겠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치지만 속수무책”이라며 “투자자들의 심리적 공황과 맞물려 이같은 상황이 지속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각종 인터넷 증권사이트에는 막심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의 하소연이 쏟아졌으며 ‘묻지마 투매’를 경계하며 이성을 되찾자고 호소하는 글이 수십건씩 올라 왔다.
이번 대폭락 사태와 관련, 서울벤처밸리에 밀집한 벤처기업들은 저마다 향후 대책에 부심하는 표정. 일부 업체는 빗발치는 투자자들의 항의전화로 아예 전화를 내려놓기도 했다. 이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코스닥에 ‘자금줄’을 대고 있는 상당수 벤처기업들이 큰 장애를 겪을 것”이라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일부 업체들은 이번 사태가 그동안 거품논쟁이 일었던 벤처업계의 ‘옥석(玉石)’을 가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