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부터 시행돼온 공정거래위원회의 ‘30대 대규모기업집단 지정제도’가 외국기업과의 역차별을 주장하는 재계의 강력한 반발 속에 존폐의 기로에 몰리고 있다.
특히 16일 발표한 2000년도 30대 기업집단에서 상위 4대그룹의 총자산이 30대그룹 전체의 57.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5대 이하 그룹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4대그룹도 외환위기 이후 상호채무보증 해소, 부채비율 200% 축소 등 재무구조 개선에 노력해온데다 시장개방으로 외국 기업과의 직접적 경쟁에 직면한 만큼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가 국내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30대그룹으로 지정된 그룹은 공정거래법상 16개 규제, 기타법으로 25개 규제 등 41개의 규제를 받게 된다.
이에 따라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공정위에 기업집단 지정대상의 대폭 축소, 혹은 폐지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올해 안에 기업집단 지정제도의 개편방안을 논의해볼 수 있지만 폐지는 곤란하다는 입장.
공정위 강대형(姜大衡)독점국장은 “30대 기업집단 지정제도는 재벌의 각종 방만한 경영형태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라며 “재벌의 행태가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이 제도가 필요 없을 만큼 개선된 건 아니다”라고 재계의 폐지론을 일축했다.
이에 대해 전경련 신종익(申鍾益)규제개선팀장은 “과거 금융 세제가 미비하고 국내시장이 보호된 상황 아래서는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의 필요성이 어느 정도 인정된다”면서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동일인 여신한도 규제, 부채비율 200% 제한 등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만큼 기업집단 지정제도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올해 30대그룹으로 신규 지정된 신세계의 한 관계자는 “채무보증을 이미 해소하는 등 별다른 문제가 없기 때문에 경영상 변화는 없다”면서도 “각종 규제로 인해 불이익만 받게 됐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또 기업집단 지정 기준이 자산총액이기 때문에 올해 지정돼 각종 규제를 받다가 내년에 자산규모가 작아져 제외되면 규제를 받지 않는 등 경영혼선만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새로 30대그룹에 진입한 7개그룹은 내년 4월까지 채무보증 해소 등 각종 규제를 받지만 내년에 자산총액 30대에서 탈락하면 이같은 의무를 이행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5대 이하인 A그룹 관계자는 “30대그룹으로 지정되면 각종 규제로 인해 합병 등 구조조정이 어려워지고 신규사업 진출은 더욱 어려워진다”며 “국내 진출 외국 기업들은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데 국내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공정위 관계자는 “4대그룹과 하위 그룹간의 격차가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자산총액을 기준으로 한 기업규모가 중요한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재무건전성을 보더라도 자산총액이 적은 하위그룹들이 오히려 상위그룹보다 더 나쁘다는 것.
이에 대해 B그룹 관계자는 “차입경영은 금융감독원과 채권금융기관이 감독해야 할 일이지 공정위가 나설 일은 아니다”라며 “공정위의 조직이기주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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