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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춘향뎐' 칸 본선 첫 진출…예술성 국제 공인

입력 | 2000-04-18 19:28:00


‘춘향뎐’의 칸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부문 진출은 그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으면서도 국제 무대의 중심에서 예술적 성취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한국영화의 숙원 과제를 이뤄낸 경사라 할 수 있다.

1946년 창설된 칸 영화제는 베를린 베니스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로 꼽히고 있지만 이 가운데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 역사가 베니스 영화제(1932년 창설)보다 짧지만 전세계를 지배하는 할리우드 대작영화의 상업성에 맞서 소위 ‘예술영화’를 옹호하는 보루로서의 역할도 해 왔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지금까지 한국영화가 경쟁부문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했던 영화제는 칸 영화제 뿐. 베를린 영화제에는 61년 강대진 감독의 ‘마부’를 시작으로 모두 4편, 베니스 영화제에도 87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 등 2편이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칸 영화제의 경우 공식 비경쟁 부문인 ‘주목할만한 시선’에 이두용 감독의 ‘물레야 물레야’(1984년)를 비롯해 지금까지 3편의 영화가 진출했고 비공식 부문인 비평가 주간, 감독 주간 등에도 간혹 진출해 왔다. 그러나 유독 경쟁부문은 한국영화가 뛰어넘기 어려운 높은 벽이었다. 이 때문에 영화계 인사들은 “내 영화가 아니라도 좋으니 한국영화가 칸의 뤼미에르 대극장(경쟁부문 진출작 상영관)에 걸리고 한국영화인이 그 앞의 붉은 카펫을 밟는 것을 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춘향뎐’은 칸 영화제 극동아시아영화 선정위원인 피에르 르시앵이 지난해 5월 제작발표회에 참석하는 등 제작을 시작할 때부터 칸 영화제측이 높은 관심을 보여온 영화다. 제작사인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은 “2월초 칸 영화제에 출품 신청을 한 뒤 이달 초 영화제측으로부터 ‘춘향뎐’은 공식 부문(△경쟁 △특별상영 △‘주목할만한 시선’)에 포함되며 이중 ‘주목할만한 시선’은 아니라는 연락을 비공식적으로 미리 받았다”면서 “질 제이콥 집행위원장이 영화의 독특한 형식에 매우 높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춘향뎐’의 칸 경쟁부문 진출에 대해 영화진흥위원회 조희문 부위원장은 “최근 산업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 한국영화가 국제무대에서 예술성을 평가받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영화 발전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에는 ‘춘향뎐’뿐 아니라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이 공식 비경쟁부문인 ‘주목할만한 시선’에 진출하고 비공식 부문인 감독주간에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비평가 주간에 정지우 감독의 ‘해피 엔드’가 진출함으로써 한국영화사상 최다 칸 진출의 기록을 세우게 됐다.

한편 ‘춘향뎐’의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칸 진출을 기념해 5월 중 ‘춘향뎐’을 국내에서 재개봉할 예정이다.

susanna@donga.com

▼임권택 감독 일문일답

“…. 아이고 힘드네요.”

18일 새벽 2시경 “해냈시다. 고생했시다”는 태흥영화사 이태원사장의 축하 전화를 받은 임권택감독(65)의 첫 반응이었다. 그 여운이 채 가시기 전인 이날 오전 10시반경 임감독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태흥영화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1981년 ‘만다라’을 시작으로 ‘길소뜸’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을 통해 국제 무대에서 우리 영화의 성가를 높여온 그도 다소 들뜬 표정이었다. ‘춘향뎐’은 그의 97번째 작품.

―소감은.

“다른 작품도 아니고 ‘춘향뎐’이라는 점이 기쁩니다. 아시다시피 ‘춘향뎐’은 민족적 색채가 두드러집니다. 또 판소리 자체를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시도가 담긴 작품이어서 문화적 풍토가 다른 서양인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궁금했습니다.”

―이상스럽게도 칸영화제와는 인연이 없었는데.

“베를린이나 베니스영화제 등 다른 국제 영화제에서는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고 자부합니다. 이상하게도 칸은 벽이 높았어요. 때로 ‘야속하다’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춘향뎐’의 칸 경쟁 진출은 한국 영화의 완성도가 한 단계 높아졌다는 국제적인 공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번에는 ‘녹음이 이상하다느니, 현상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지적이 없었습니다.”

―이번 ‘경사’와 달리 국내 흥행(서울기준 15만명) 부진으로 마음 고생이 심했을 텐데.

“아직까지도 그 충격으로 다음 작품에 대한 생각이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일부에서 미성년자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까지 있어 ‘차라리 영화를 접자’는 독한 마음까지 품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일단 5월18일(현지시각)로 예정된 ‘춘향뎐’의 르미에르 대극장 상영을 위해 현지에 갈 생각입니다.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앞으로도 제 나이에 맞는, 나이가 배인 그런 영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

gskim@donga.com

▼임권택 감독 '춘향뎐'은…

임권택감독의 ‘춘향뎐’은 고전 춘향전을 소재로 한 극영화로는 14번째 작품.

하지만 ‘춘향뎐’은 판소리와 영상을 겹합시켰다는 점에서 우리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판소리를 사실상의 주인공으로, 영상 조명 등 다른 영화적 요소들이 이를 뒷받침하는 파격적인 시도는 독일 프랑스 등 해외영화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는 후문이다.

작품의 원안은 4시간35분에 이르는 ‘조상현창본 춘향가’이며 현재 국립극장장인 김명곤이 각색을 맡았다. 상영시간 중 55분간 조상현명창의 판소리가 나오는 ‘판소리 영화’다. 조승우와 이효정이 남녀 주연.

임감독은 “종종 주인공들이 작품 중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다”면서 “소리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배우의 얼굴이 기억난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라고 말했다.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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