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대 신입생 이모양(19·외국어문학부). 오전 9시에 등교해 첫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단과대 전산실로 달려간다. 이곳에서 리포트 작성을 한 뒤 동호회 회원이나 친구들과 주고받은 E메일 답장을 해주다 보면 오전 시간이 지나간다. 오후에는 수업을 마치거나 공강(空講)시간이 2시간을 넘을 경우 사람이 많은 전산실을 피해 아예 학교 앞 PC방으로 자리를 옮긴다.여기에서도 게임과 채팅 등으로 시간을 보내다 오후 늦게 영어학원으로 향하면 어느새 하루해는 금방 지나간다.
“이렇게 하루를 지내다 보면 학과 선배나 친구는 만날 수 없지만 대학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공부뿐만 아니라 미팅이나 동아리활동도 모두 인터넷을 통해 나홀로 해결할 수 있거든요.”
디지털문화가 대학가에 깊숙이 파고들면서 대학생활의 대부분을 혼자 해결하는 ‘나홀로’문화가 대학생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특히 디지털문화의 첨병인 N세대가 대학생의 주류층을 이뤄 과거 대학생활의 중심인 과방이나 동아리방은 나홀로족 신입생들로부터 외면과 냉대를 받는 반면 대학교내의 전산실은 만원을 이루는 등 ‘디지털형 대학문화’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대학 내 디지털문화의 중심권으로 떠오른 곳은 인터넷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각 대학 전산실. 특히 ‘나홀로족’ 신입생들은 수업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선배나 친구를 만나는 대신 전산실에서 인터넷을 이용해 숙제를 하거나 채팅과 게임 등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여파로 학교 전산실마다 몰려드는 학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연세대 전산원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전산실에서 살다시피하는 학생들이 늘면서 하루종일 초만원을 이뤄 10여명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신입생들의 요구사항 중에는 전산실을 늘려달라는 것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공강시간과 수업 후에는 PC방을 찾는 학생들로 낮시간에도 대학가 PC방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내기 대학생들로 붐비던 대학가 당구장은 ‘혼자놀기’를 즐기는 N세대 학생들이 발길을 돌리면서 손님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신촌지역의 경우 당구장의 절반 이상이 최근 PC방으로 전업했으며 이는 다른 대학가도 비슷하다.
학년초마다 선배와 친구들을 사귀려는 신입생들로 북적대던 과방이나 동아리방은 학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분위기가 썰렁해진 곳이 대부분.
리포트작성과 시험준비에서부터 미팅과 동호회 활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학생활을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N세대들에겐 ‘공동체문화’를 요구하는 선배들이 성가신 존재가 되고 말았다.
연세대 심리학과 학생회장 박서연씨(21)는 “요즘엔 저학년의 참석률이 워낙 낮아 신입생환영회나 개강파티를 생략하는 과들도 많아졌다”며 “신입생의 생일파티를 열어주는 등 후배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별 반응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학부제의 도입으로 선후배간의 유대가 약화된데다 영어와 컴퓨터 학점인증제 등을 앞다투어 도입하는 학교측의 학사행정이 학생들에게 낭만과 여유보다는 실리찾기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많다.
서울대 경영대 신입생 김모군(19)은 “선후배의 끈끈한 정이 사라진 대학에서 도서관과 전산실만을 오가며 하루를 보내다보면 고3생활로 다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라며 “솔직히 ‘이럴거면 왜 대학에 왔나’라는 회의가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는 ‘나홀로’문화의 확산으로 학교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늘자 지난해부터 ‘대인관계 능력개발프로그램’을 별도로 실시해 매달 100여명의 학생이 참여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서울대 학생생활연구소장 김계현(金桂玄·교육학과)교수는 “개인주의의 확산이 사회전반의 추세이긴 하지만 사회적 고립이나 관계단절로 혼란을 겪는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상담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며 “이들의 적응문제에 대해 대학측에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