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차 채권단과 프랑스 르노간의 4차협상이 파리에서 열리던 21일. 국내에서 상황보고를 받던 한 채권단 관계자는 “이건 협상이 아니다. 차라리 깨졌으면 좋겠다”고 푸념했다. 르노측의 협상 태도가 지난 협상때와 완전히 다르게 고자세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협상 종료 몇시간 전까지도 ‘인수조건 등에 합의하면 최종 인수가액을 제시하겠다’는 식의 협상상식에 어긋나는 제안까지 해왔다는 것.
사실 삼성차 채권단 협상팀이 파리로 출국하기 전 이같은 상황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정부가 18일 경제정책의 최고 협의기구인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삼성차를 우선협상기한 만료일(21일)까지 매각하도록 채권단을 독려하겠다’고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르노측이 지난달 2, 3차 협상 때만 해도 유연한 자세를 보여 채권단의 기대를 부풀게 했지만 정부의 이 발언 하나로 협상팀의 손발은 완전히 묶여버린 셈이다. 정부가 파는 쪽을 급하게 만들었던 결과로 채권 금융기관은 매각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됐다.
문제는 정부의 이같은 태도가 삼성차 매각의 단일 사안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대우 워크아웃을 추진중인 한 채권은행 관계자는 “일부 워크아웃 기업은 채권단 경영관리아래서 충분히 기업가치를 높여 채권을 회수할 수 있는데도 정부는 대외신인도 제고차원에서 가급적 조속히 매각하라고 권유하고 있어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 장관은 금감위원장 시절부터 “기업매각은 속도보다 제값 받는 것이 우선”이라는 원칙을 누차 밝혀왔으나 그 원칙을 현장에서 발견한 사례는 드물다.
물론 매각 지연으로 인한 대외신인도 하락을 걱정하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시장주의를 부르짖는 만큼 필요할 때 ‘침묵하는 방법’을 서둘러 배워야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국부유출 논쟁이 두고두고 정부를 괴롭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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