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가 “20세기는 들뢰즈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 영화광이기도 했던 들뢰즈가 198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 내놓은 영화이론이 최근 국내 일부 평론가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영화이론서 ‘시네마1:운동-이미지’와 ‘시네마2:시간-이미지’는 현재 국내에서 번역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영화 무크지 ‘필름 컬처’ 최근호는 ‘들뢰즈 시네마 읽기’를 특집으로 다뤘다. ‘필름 컬처’의 임재철편집주간은 “난해성으로 인해 신비화되고 있는 들뢰즈의 ‘시네마’를 객관적으로 이해해 보려 했다”고 기획취지를 설명한다.
들뢰즈가 ‘시네마’에서 새로운 영화분석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아니다. 들뢰즈는 프랑스에서 수십년간 축적된 영화이론들을 바탕으로 오히려 영화를 통해 기존 철학을 재조명했다. 들뢰즈는 영화를 ‘철학하는 도구’로 삼은 것이다. 김성태씨(서강대 영화학 강사)는 “영화를 철학의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사유하는 도구로 만들었다는 점이 들뢰즈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철학적으로 들뢰즈는 변치 않는 형이상학적 실체를 추구해 왔던 서양철학의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 속에서 인간의 감성이나 구체적인 삶을 읽어내려 하는 비주류, 그 중에서도 해체론의 대열에 서 있다.
그가 영화론을 폈건, 영화를 철학의 도구로 삼았건 그의 영화이론은 어쩌면 당연하고 단순하다. 영화를 기호로 분석하지 말고 ‘영상 그 자체로’ 보자는 것이다. 들뢰즈는 인간은 감각기관에 포착된 것을 근거로 그것에 접근한다고 보았고 그 감각기관에 포착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영화라는 것이다.
들뢰즈의 ‘시네마’에는 칸트, 퍼스, 니체 등 여러 철학자들의 이론이 동원된다. 하지만 ‘시네마’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자는 생(生)철학자인 베르그송이다. 박성수교수(한국해양대)는 “베르그송은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합리적이라고 여겨져 온 개념적 공간적 사유 대신 비합리주의적이라고 평가돼 온 시간적 사유에 주목했고 들뢰즈는 이를 영화에 적용했다”고 말한다. 들뢰즈가 베르그송의 시간적 사유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영화의 이미지에 적용했다는 것이다.
들뢰즈는 크리스티앙 메츠의 기호학적 영화이론을 비판했다. 메츠가 소쉬르의 기호학을 영화연구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영화를 철저히 과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후 영화를 일종의 언어적 기호로 분석해 의미를 파악하는 방식이 일부 평론가집단의 각광을 받게 됐고 이후 평론가들은 영화를 ‘복잡하게’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미지가 언어적 기호로 대체되는 바로 그 순간 이미지의 진정한 특징인 ‘운동’은 소실되고 만다고 주장했다.
결국 들뢰즈의 ‘시네마’에 관한 논란은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읽으려 하는’ 국내 영화평론의 현단계를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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