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오늘 저녁 시간 있나?”
최근 벤처기업으로 옮긴 송모씨(43)가 S사에 전략팀 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입사동기 김모씨의 전화를 받은 그는 흔쾌히 저녁초대에 응했다. 그런데….
“나도 조직생활 지긋지긋해. 뭔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나고 싶거든.”
은근슬쩍 송부장의 ‘이직설’을 확인하려드는 김씨. 헤어질 때쯤 되자 그는 노골적으로 “사표는 며칠자로 낼거냐”고 물었고, 이후 그가 관련부서 임원에게 자신의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로비’를 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이같은 노력 덕일까. 결국 전략팀 부장은 김씨가 맡았다. ‘주전’이 떠난 그 자리를 누군가는 차지하기 마련이기에.
▼사자가 없는데서는 여우가 왕?▼
50여마리씩 집단생활을 하는 맨드릴원숭이는 다른 집단에서 수컷이 들어오거나 ‘왕’의 자리에 있던 수컷이 늙어 힘이 없어지면 비슷한 여러마리의 수컷끼리 투쟁이 벌어진다.
에버랜드 동물원 신남식원장. “서로 강렬한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보는 기싸움을 벌이지만 때로는 서로 물어뜯는 투쟁을 벌이기도 하며, 이는 집단생활을 하는 다른 동물들도 비슷하다.”
5∼18마리씩 무리지어 사는 사자 세계에서도 18개월∼10년씩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왕은 단 하나. 가장 힘이 센 우두머리 아래 생활하는 캥거루도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선 서로 물어 뜯거나 ‘복싱’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왕'이 돼야한다▼
있는 듯 없는 듯, 납작 엎드려 지내도 되던 시절은 갔다.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지 않으면 왠지 불안한 능력위주 사회. 더 좋은 자리로 이직은 하지 못하더라도 남이 버리고 간 ‘왕’의 자리는 꿰차야 한다.
A닷컴 홍보실 박모대리(31)는 “일의 성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고 역량을 쌓을 수 있으며 인정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비었다는 소문은 특히 빨리 퍼진다”고 전한다. 최근 해외홍보담당이 사표를 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홍보실에는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200여통의 전화와 e메일을 받았다는 박대리는 후임자가 선정되기까지 며칠간 “말 좀 잘 해달라”는 대가성 점심식사 대접을 받았다.
▼빈 틈을 노려라▼
팀원들의 아이디어를 ‘도용’해 빛났던 팀장급 ‘선수’가 퇴사를 하고 후임자가 오기 전까지 1주일간. R사 기획팀은 비상이 걸렸다. ‘그 동안 팀장이 낸 아이디어가 사실은 내 것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평소 오후 6시에 퇴근하던 기획팀원 5명은 밤 11시 이후로 퇴근시간을 미루면서 ‘있으나 마나했던 팀장’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바빴다.
후임 팀장은 타부서에서 옮겨왔지만 팀원들은 인사권자에게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는데는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인사야 언제 있어도 있을 것이므로.
▼주전만이 살아 남는다▼
드림서치 커리어 컨설턴트 이기대씨는 “자신이 ‘주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도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조직에서 내부 발탁인사를 할 경우 1등보다는 2,3등의 후보가 선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아직까지 ‘능력있는 사람’보다는 ‘믿을만한 사람’이 선호되는 경향 때문. 주전으로 선정되더라도 제 역할을 다 하기 위해서는 독불장군으로서가 아니라 ‘팀플레이’가 필수라는 것이다.
어차피 빈 자리. 남이 아닌 내가 그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십계명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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