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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신탁재산 관리자의 '무책임'

입력 | 2000-04-25 19:49:00


현대투신운용 하면 한국의 간판기업 현대그룹의 계열 투신운용사다. 그리고 현대투신운용의 ‘바이코리아’펀드는 부실채권 투자비율 0%를 주장해 온 ‘깨끗한 펀드’의 대명사쯤으로 투자자들에게 인식돼 왔다. 그런데도 현대투신운용은 특정펀드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부실채권을 자사의 다른 펀드들에 멋대로 편입시켜 이를 시장에 털어내는 방식으로 부실채권을 상각하고 선의의 고객들에게 큰 손실을 떠넘겼다.

그 수법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현대투신운용쯤 되는 회사가 신탁재산 관리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저버렸다는 사실이다. 현대투신운용은 펀드자산의 5%까지 다른 펀드의 수익증권을 매입할 수 있는 점을 악용해 계열사인 현대투신증권이 채권형 펀드에서 부실채권을 분리해 조성한 부실채권 상각 전용펀드(배드펀드)를 고객 몰래 바이코리아펀드에 편입시켜 부실을 털어내는 수법을 썼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이 입은 손실은 장부를 열람한 2개의 펀드에서만 290억원에 이른다. 만약 바이코리아의 모든 펀드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손실규모는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런데도 현대투신운용은 오는 7월 실시될 채권시가평가제를 앞두고 부실채권이 집중적으로 편입된 수익증권을 털어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자사 펀드들의 수익률을 평준화시켜 수익증권 판매를 확대하고 자산운용능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강변한다. 비록 회사측이 별도의 이익을 챙기지 않았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선의의 투자자를 울려놓은 셈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금융감독원에 있다. 지난해 6∼7월 주가가 급등했던 시기에 각종 펀드의 불법운용이 공공연한 사실로 드러났으나 이를 단속하지 않았다. 배드펀드 조성수법은 투신권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부실채권 세탁’ 방식으로 상당수의 투신사들이 이같은 수법을 통해 수익률을 조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에야 현대 금융계열사 등에 대한 연계검사에 나서 이를 확인했다. 그러고도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채 대표이사에 대해 3개월 업무정지 등의 가벼운 징계조치만 내렸을 뿐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수익증권 고객은 은행 예금자가 아니라 투자자이기 때문에 감독당국이 개입할 사항이 아니라는 금감원의 태도다. 그러나 현대투신운용의 불법행위는 엄연한 증권투자신탁업법 위반이다. 마땅히 금감원은 투자자의 손실이 보상될 수 있도록 시정명령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