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에 실릴 ‘김희경기자의 시네닷컴’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 문화기호인 영화를 깊이있게 읽는 칼럼입니다. 김기자는 여성의 시각을 넘어 성의 남녀를 포괄하는 보편적 정서를 바탕으로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도발적 메시지로 다가갈 것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 글을 읽기 전에, 포르노 여배우 1명이 10시간 동안 251명의 남자와 성관계를 가진 실제 기록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섹스:애너벨 청 스토리’가 엄청나게 야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전혀 아니라는 말부터 하고 싶다.
일부에서는 ‘성(性)영화 심의에 브레이크가 풀렸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성적 표현의 ‘자극성’만 놓고 본다면 ‘거짓말’이나 ‘감각의 제국’보다 못하다. 단언컨대, ‘섹스:애너벨 청 스토리’는 오락을 원한다면 절대로 보지 말아야 할 영화다. 주인공 애너벨 청의 비상식적 섹스 퍼포먼스로 관음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신,‘도대체 이 여자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 다큐멘터리다. 설명이 불충분한 구석이 많아 썩 잘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 영화는 끔찍한 상처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자기파괴로 치닫는 여자에 대한 보고서와도 같다. 영화가 시작할 때 갖게 되는 ‘1대 251의 섹스’에 대한 궁금증은 영화가 끝날 즈음이면 외면하고 싶을만큼 흉하게 벌어진 상처를 바라봐야 할 때의 고역스런 느낌으로 변한다.
영화는 애너벨 청이 싱가포르 중산층 가정에서 잘 자란 아이였고 영국 옥스퍼드대를 나왔으며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여성학 석사라는 점을 줄곧 강조한다.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가 아주 지적인 학생이었다 점을 드러낸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녀는 ‘머리가 빈’ 포르노 배우가 아니라, 그녀의 행동에는 뭔가 이유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일자무식의 포르노배우였다 해도 별 상관이 없었을 것 같다. 애너벨 청은 “여성의 억눌린 성욕은 해방되어야 하며 그 한계를 실험해보고 싶었는다’는 일관된 논리를 제시하지만 논리와 실제 행동 사이의 갭이 너무 큰 탓에 그녀의 주장은 공허하게 들린다.
이 공허함은 섹스 이벤트를 담은 비디오 테이프가 불티나게 팔려도 전혀 돈을 벌지 못한 그녀의 초라한 아파트, “나는 스타”라고 주장하며 포르노 영화 출연료를 올리려고 실랑이를 벌이다 금방 출연료를 깎아주는 그녀의 전화통화 장면을 보면 더해진다. 애너벨 청은 여성의 성 해방에 앞장선 전사가 아니라 포르노 업자에게 이용당하고 에이즈 감염을 걱정하며 좀 더 나은 조건으로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하는 포르노 여배우일 뿐이다. 그녀가 251명과 마라톤 섹스를 가진뒤 이벤트 주최측이 곧바로 다른 포르노 여배우를 부추겨 그녀의 기록을 깨뜨리는 장면에서도 드러나듯, 그녀는 자신의 주장과 달리 포르노 업계의 자발적인 희생양이었다.
그녀의 선택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풀리지 않을 때 관객은 애너벨 청의 과거와 만난다. 런던의 한 지하철 역에서 6명의 남자로부터 윤간을 당한 그녀의 과거사다. 유리조각으로 팔뚝을 그으며 “고통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말하는 자기학대의 진원지도 아마 이 끔찍한 경험이 아닐까.
그러고보니 퍼포먼스 도중 251번째인 거구의 남자와 섹스를 하면서 통증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지면서도 “계속해줘!”를 외치는 그녀의 모습은 유리조각으로 팔을 긋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섹스 퍼포먼스 조차 자신을 긍정하는 방법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스스로 상처를 내고 고통 앞에서 난 아무렇지도 않다는, 위악적인 자기기만으로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이해하는 건 지나친 해석일까. 하지만 싱가포르에서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너희는 뭐가 그렇게 잘났어”하고 소리를 지르고 달아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 영화 ‘매그놀리아’에서 자기파괴의 극단으로 치닫던 클라우디아에게 구원의 손을 내민 경찰관같은 사람을 애너벨 청에게 데려다 주고 싶어진다.
그녀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이 되다가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충동을 갖게 하는 대목은 포르노배우를 그만두고 방황하다 1년 뒤 다시 포르노 업계로 돌아온 애너벨 청이 “더이상 잃어버릴 게 없으니 이젠 자신있게 임할 수 있다”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정말 궁금해지는 건, ‘더이상 잃어버릴 게 없을’만큼 한 여자가 참혹하게 망가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가 뭐 그렇게 돈벌이가 될 것 같다고 영화 수입업자들은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판권가격이 2만∼3만달러 밖에 안하던 이 영화에 10만달러가 넘는 액수를 불러가며 경쟁을 벌였을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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