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는 60년대말 중학교 입시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이 점심 저녁 도시락을 싸들고 등교, 학교 수업을 마친 뒤 교사의 집이나 학원 등지에서 밤늦도록 과외를 받았다.
69년 중학교 무시험입학제도는 초등학생 과열 과외를 일시에 해소했다. 그러나 초등교육 의무화 정책에 따라 교육인구가 급팽창하면서 중학생이 늘어나자 고교 진학을 위한 과외가 극성을 부렸다
정부는 74년 고교 평준화 정책으로 급한 불을 껐지만 이제는 대입 과외가 문제가 됐다. 입시제도 개혁을 통한 과외정책은 문제의 발생시기를 늦추는 효과만 있었을 뿐이다.
80년 신군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를 통해 ‘대학 졸업정원제와 과외 전면 금지’를 골자로 한 이른바 ‘7·30 교육개혁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재학생의 과외 교습이 전면 금지됐으며 교습자와 학부모에게도 형사입건 세무조사 면직 등 강력한 제재가 가해졌다.
과외 단속반은 과외를 하는 사람들을 적발해 제재조치를 내렸지만 입시 경쟁이 있는 한 과외에 대한 수요가 사라질 리는 없었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과외를 하는 대학생이 숨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의미의 ‘몰래바이트’란 단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부유층은 과외 교습자에게 ‘위험 수당’을 줘 과외비가 치솟았다.
한 여대생이 가족의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하다 적발되자 여대생을 동정하는 여론이 이는 등 무리한 조치의 부작용이 나타나자 정부는 점차 과외를 허용하는 조치를 취했다.
정부는 과외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이 들자 90년대 들어 과외를 양성화해 과외비 하락을 유도하는 정책을 택했다. 위성방송을 이용한 과외 등은 과외의 공급을 늘리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같은 정책은 과외를 과외로 막으려다 과외의 대중화를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는 이후 공교육을 강화하고 다양성을 중시하는 교육정책을 택해 과외 수요를 줄이려는 정책을 취하고 있지만 효과는 아직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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