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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투자자 불신이 주가 폴락 불러구조조정 서둘러야

입력 | 2000-04-27 23:20:00


종합주가지수 600대를 바라보는 심정이 참으로 착잡하다. 주식시장 주변 모든 것이 장밋빛이던 불과 4∼5개월 전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미국증시 폭락으로 촉발된 하락장세는 투신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이 깊어지면서 혼미를 거듭하다 급기야 현대그룹 주가폭락으로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주식시장은 정녕 우리에게 등을 돌리는 것일까. 무엇이 잘못 됐을까.

주식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오래 전부터 예상됐던 투신사 구조조정이 아직껏 큰 불안요소로 남아있는 것은 정확한 투신권 부실규모와 손실 분담원칙, 또 부실을 메울 방법에 대해 명확한 그림이 제시되지 않는 까닭이다.

투자자들은 적어도 최근 발표된 투신사 처리방안이 문제해결의 종착역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작년말 양대투신에 대한 3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지 반년도 안돼 왜 5조원을 또 쏟아부어야 하는 걸까. 그 때는 뭘 잘못 판단했던 것인가. 이번이 과연 마지막 공적자금 투입인가. 공적자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나오는 한 주가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현대주식 폭락은 투자자들의 믿음을 잃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대의 자금위기설은 사실이 아니겠지만 현대에게 신뢰의 위기가 닥친 것은 분명하다.

지난 1∼2년간 현대의 행보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기아자동차 국민투신 한남투신을 잇따라 인수하고 대우자동차까지 넘봤던 현대가 과연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하는 구조조정을 거쳤던가. ‘부채비율 200%’의 명제는 군살을 빼서 빚을 갚으라는 것인데 증자를 통해 비율만 맞추는 것이 진정한 구조조정인가.

작년 현대그룹이 실시한 수차례 대규모 유상증자의 후유증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난맥상과 주주를 무시하는 기업문화는 투자자들이 현대에 대해 갖고 있던 마지막 애정까지 버리게 했다. 주식시장은 지금 현대에 진정한 구조조정을 가혹하게 요구하고 있다.

주식시장은 경제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때로는 과잉반응을 하고 때론 심리와 감정이 지배하는 비과학적인 일면을 보이기도 하지만 주가수준은 그 나라 경제의 건강상태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지표다.

600선으로 곤두박질한 주식시장은 호황의 분위기에 취한 우리들에게 금융 및 재벌 구조조정에 다시 박차를 가하라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물론 많다. 금리안정 속에 경기가 강하게 상승하고 주식시장으로 돈이 물밀 듯이 들어오던 작년은 정말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것은 결국 가장 위험하고 고통스런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주가폭락으로 인한 손실은 이미 발생했지만 이 아픔을 헛되지 않게 전화위복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이원기(李元基·리젠트자산운용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