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중에 케냐의 응구기 와 시옹오(62)가 있다. 소잉카, 고디머, 아체베 같은 아프리카 거장들과 나란히 제3세계 탈식민주의 문학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하지만 국내 번역된 작품이 없어 일반인은 그의 명성을 확인할 기회가 없었다.
최근 응구기의 대표작 ‘한 톨의 밀알’(들녘)이 국내에 지각 출간됐다. 1967년 발표한 초기작으로 서구에서는 이미 고전으로 자리잡은 소설이다. 번역을 맡은 전북대 왕은철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건강한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로렌스의 서정성과 콘라드의 비극성을 조화시켜 응구기의 작품중 최고작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소설은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일제에 상처입은 일제시대 조선민중을 떠올릴 만큼 자연스럽게 읽힌다.
때는 1963년 농민을 주축으로 영국 식민지에 대한 저항운동이 극에 달했던 비상시국. 독립투사를 밀고하려 했지만 도리어 영웅 대접을 받게 된 무고와 수용소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다가 아내에게 돌아가려고 조직을 배신한 기코뇨가 주인공이다.
소설은 서정적인 분위기와 회상 기법을 통해서 둘의 심리적 갈등을 세밀하게 되밟아간다.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던 두 사람은 결국 긴 고뇌의 시간을 끝내고 도덕적 결단을 내린다. 무고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배신을 고백함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기코뇨는 아내가 낳은 배신자의 아이를 인정하고 새출발을 다짐한다. 1963년말 독립을 쟁취한뒤 분열된 케냐 동포들에게 용기와 화해가 새 시대를 꽃 피울 ‘밀알’임을 우회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응구기의 소박한 바람과는 달리 케냐는 독립 이후 지금까지 장기간의 독재와 내분으로 가치의 무정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행동하는 지식인의 상징이었던 그는 풍자극과 대중연설 등 반체재 활동을 벌이면서 투옥을 거듭하게 된다. 영어를 버리고 자기 부족언어인 기쿠유어로 작품을 발표한 것도 이때부터. 영어는 지배자의 언어이며 스스로 식민지 근성을 버려야 한다는 남다른 소신 때문이었다. 70년대 시인 김지하의 구명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던 그는 1982년 케냐에서 추방된 이래 지금까지 외국을 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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