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 나스닥시장의 폭락 이후 세계증시 분위기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사실상 미국 주가의 거품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의사회(FRB)의장의 경고는 이미 3년 전에 시작됐고 금년 들어서는 예일대의 로버트 실러나 MIT의 폴 크루그먼 같은 학자들의 경고도 잇따랐다. 특히 4월초에는 타이거펀드의 파산에 이어 템플턴펀드의 마크 모비어스 사장과 골드만 삭스의 애비 코언도 경보를 울렸다. 결국 미국증시의 폭락은 현실화되었고 전세계 주가의 동반하락을 촉발시켰다. 당분간 조정국면이 지속되리라는 견해가 지배적인 가운데 주가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면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국제금융 여건의 변화는 경제위기를 막 벗어나고 있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정책적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첫째로는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최근 나스닥의 폭락현상을 신경제에 대한 본격적인 시험대로 보는 것은 속단이다. 오히려 첨단기술주 및 인터넷주의 옥석이 가려지는 불가피한 조정 과정으로 보이며 벤처의 내실화를 높이고 구경제와의 조화를 추구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경제여건이 급변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과잉반응이다. 신경제의 순기능을 과신하는 것도 문제지만 향후 세계경제의 기본틀이 정보 기술혁신에 근거한 디지털 경제체제로 전환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대세다.
둘째, 안정적 거시경제 기조의 유지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다 보면 기류변화에 따른 기체동요를 경험할 때가 있다. 이러한 기류급변시 조종사의 일차적 대응은 감속과 안전운행이다. 금년도 실질 경제 성장률이 당초 목표를 크게 상회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현 시점에서 바람직한 거시정책 운용은 적정 성장을 지향해야 한다. 경기과열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대외수지면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무역수지흑자 전망이 어두워지고 있음을 감안할 때 지속 가능한 성장을 통한 수입수요 조절이 필요하다.
셋째, 구조개혁의 완결을 통한 시장의 체질강화가 시급하다. 주가폭락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일시적인 부양책이 아니라 단기적 충격이 있더라도 구조적 문제의 해결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증시 변화에 대한 국내 주가의 과도한 동조화 현상은 국내 자본시장의 취약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통해 외풍을 견딜 만한 체력을 길러야 한다. 기관투자가의 육성을 통한 수요기반의 확충과 건전한 투자문화의 조성, 그리고 투신사를 포함한 금융권의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다.
넷째, 국제금융 측면에서 관리능력 제고다. 모기장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더운 날 모기가 무서워 문을 닫고 살 수 없듯이 문은 열되 모기장을 쳐야 한다는 얘기로 금융시장 개방에 종종 비유된다.
환란극복 과정에서 더욱 개방된 국내증시는 외국인 투자흐름에 크게 노출되고 있다. 다행히 포트폴리오 자금은 대체로 순유입 추세가 계속되어 국내주가를 받쳐 왔지만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외자 유출입에 대한 모니터링 기능이 제고되어야 하며 효율적인 위험관리 체제가 작동되어야 한다. 금년말로 예정된 외환자유화 확대도 좋은 모기장(적절한 보완장치)의 준비와 함께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단기투기성 자금의 효과적 규제에 대한 국제사회와의 공조노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끝으로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적 협조가 중요하다. 폭풍으로 파도가 높아져 배가 흔들릴 때 승객은 선장을 믿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미국의 경우 주가폭락에 대한 로렌스 서머스 재무장관의 입장에 대해 대통령으로부터 일반국민, 그리고 언론들까지 다투어 지지를 표했지만 국내의 반응은 사뭇 대조적이었다. 신뢰받을 정책을 펴라는 주문이 필요한 만큼 정책 담당자가 그 능력을 소신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전광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