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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내친구]약수터서 퍼온 '삶의 재미'

입력 | 2000-05-02 19:50:00


살면서 우연히 '행운'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살아온 인생 전체를 바꿀 만한 '일확천금'식의 행운이 모든 이에게 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삶의 태도'를 바꿀 정도의 소담한 기회라면 누구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서울 동대문에서 봉제 공장을 운영하는 임윤균(54)씨는 그 '행운'을 동네 약수터에서 만났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30년 넘게 살고 있는 임씨는 9인제 배구 동호회인 '신월 배구회'의 고문을 맡고 있다. 고문은 전임 회장에 대한 예우. '동네 모임'이라고는 하지만 실력만큼은 녹록지 않다. 그가 속한 신월배구회는 3월 열린 국무총리배 9인제 배구 대회에서 클럽 2부 우승을 차지했다. 35명의 회원이 매주 일요일 오후 서울경영정보고등학교 체육관에 모여 기량을 다지고 있다.

임씨가 이 모임을 알게 된 것은 10여년 전 약수터에서. 당시 의류 판매 사업에 실패하고 의욕을 잃었던 그는 울적한 마음에 평소 잘 찾지 않던 뒷산 약수터에 올랐고, 그 곳에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흙바닥에서 어설픈 몸짓으로 '9인제 배구'를 즐기는 모습을 처음 보게 됐다. 학창시절부터 운동에는 자신이 있었던 터라 함께 어울리고 싶었지만 선뜻 나설 용기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쪽에서 짝이 모자란다며 함께 운동하자고 하더라고요. 그 후로 회원 가입을 했죠."

모임의 이름은 '신월 약수터 배구회'. 81년 처음 만들어진 모임이었다. 운동을 시작한 뒤로 임씨의 생활은 달라졌다. 쓰러졌던 사업을 다시 일으킬 용기도 배구를 통해 얻었다.

중년의 나이에 시작한 운동이라 쉽지는 않았다. 다리 근육이 파열되는 등의 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배구가 재미있었다. 몇 개월이 지나자 '자세'가 나왔다. 단신(1m65)인 그는 주로 수비로 팀에 기여하는 선수.

회원들은 모임 활동에 적극적인 임씨를 회장으로 추대했고, 그는 수소문을 통해 번듯한 체육관을 빌리는 것으로 회원들의 기대에 보답했다. 약수터를 떠나면서 이름을 신월 배구회로 고쳤다. 체육 교사와 선수 출신들이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회원들은 본격적인 '배구 수업'을 받게됐고, 배구회의 실력은 날로 늘어갔다. 10여명이던 회원도 배 이상 늘었다. 회칙도 제대로 정하고 모임의 노래도 만들었다.

"중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삶의 재미를 느낀 것 같아요. 일요일 오후를 기다리면 일주일이 즐겁습니다."

이제 그는 이 '재미'를 다른 사람, 특히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한다. 96년부터 중고등부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도 배구의 '건전한 재미'를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바람 때문. 임씨는 "더 많은 사람이 모일수록 즐거움이 늘어나는 것이 생활 체육의 묘미인 것 같다"는 말로 '배구 사랑'을 표현했다.

◇ 9인제 배구 "생활속에 뿌리내리다"

9인제 배구는 한국, 일본 등 주로 극동 지역 국가에서 행해졌기 때문에 국제식의 6인제와 비교해 '극동식 배구'로도 불린다. 국내에서는 62년 이후 6인제 배구에 밀려 엘리트 스포츠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국제 무대에서는 제4회 자카르타 아시아 경기대회가 마지막 공식 대회. 그러나 6인제 배구와 달리 일반인들도 쉽게 익히고 경기에 참여할 수 있어 생활 체육에서는 아직도 많은 동호인을 확보하고 있다.

9인제 배구 동호회는 직장과 지역에서 가장 활성화한 생활 체육 동호회의 하나로 꼽힌다. 한국 9인제 배구연맹과 국민생활체육협의회에서 1년에 6,7차례의 공식 대회를 주최해 아마추어 배구인의 '잔치'를 마련하고 있다. 각 대회에는 보통 예선을 거쳐 많게는 70여팀까지 참가한다. 3월31일부터 4월2일까지 벌어졌던 국무총리배 대회의 경우 수준과 연령에 따라 종합부 클럽 1부 클럽 2부 대학부 장년부 어머니 2, 3부로 나뉘어 49개팀이 경합을 벌였었다.

동호회는 대부분 한국 9인제 배구 연맹에 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동호회 가입을 원하는 사람은 연맹에 문의하면 자신에 맞는 동호회를 찾을 수 있다. 02-414-1893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