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전문가들이 쓰는 ‘우리아이 어떡하죠?’는 매주 목요일 게재됩니다. 10대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분은 청소년보호위원회 신가정교육팀(02-735-6250)으로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교 3학년은 전쟁을 치르는 군인의 생활에 비유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에게 고3 자녀는 모셔야 할 상전이 되고, 학교는 공휴일도, 일요일도 없이 자정이 가깝도록 타율적인 자율학습으로 학생들을 다그친다.
수험생이 힘든 것은 당연하지만 이들을 상전처럼 모셔야 하는 엄마들은 더욱 죽을 맛이다. 거기다 자녀의 성적이 오르면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지만 모의고사 점수가 조금만 떨어져도 어깨에서 힘이 빠지는 것이 엄마들이다. 막상 모의고사를 본 고3 자녀는 친구들과 영화도 보러가고, 떡볶이를 먹으며 수다도 떨면서 한 순간 점수 걱정을 잊어버린다. 하지만 엄마들은 자녀보다도 더 많이 스트레스를 받고 가슴까지 벌렁거려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실제 학생이 아니라 엄마가 고3병에 걸리는 경우를 진료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자녀에게 거는 기대가 큰 엄마일수록 더 심한 스트레스를 겪는다. 엄마들의 마음 속에는 자신의 소망을 자식을 통해 이루려는 욕심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인생을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공부 안 하는 자식이 걷게 될 험한 인생행로가 불을 보듯 뻔하게 보여 안타깝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한 시간이라도 더 공부시켜 점수를 올려야만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마음이 조급해진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만 돌이켜 보자. 나의 자녀는 내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내가 아니니 곧 남이다. 남을 내 마음대로 하려는 생각에는 무리가 있다. 나 자신도 조절하기 어려운 것이 인간이 아닌가?
남을 통해 내 꿈을 이룰 수는 없다. 남의 공부를 내가 대신할 수도 없다. 따라서 자식의 모의고사 점수가 좀 올랐다고 천국이 되고, 떨어졌다고 해서 지옥이 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로서 마땅히 관심을 갖고 도와줄 일이 있으면 도와주되 거기에 만족해야 한다.
자신의 성적으로 인해 엄마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줄 아는 고3 자녀는 그 부담으로 인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기보다는 정신적인 피로로 쉽게 지칠 수가 있다. 자신을 위해 공부하는 것인지, 엄마를 위해 공부하는 것인지 혼란이 온다. 어떻게든 자녀의 성적을 올리려는 강박적인 생각은 일종의 함정이다. 부모로서 할 도리를 다 하고 자녀가 자신의 길을 바로잡아 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순리이지, 어떻게든 성적을 올려놓겠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고3은 한국 청소년들이 겪어야 할 삶의 과정이다. 자녀가 인생을 순조롭게 항해하기 위해서는 엄마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야 한다. 아무리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나 자신은 아니다. 자녀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나로부터 개별화시켜 생각할 수 있을 때 고3 엄마의 정신적 건강이 유지될 것이다.
주은정(을지병원 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