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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유재영시집 '지상의 중심이 되어'

입력 | 2000-05-05 20:03:00


▼'지상의 중심이 되어' 유재영 지음/시와시학사 펴냄▼

사람을 놀라고 뛰게 만드는 말(言)들이 있다. 요즘은 그런 말들도 많이 시어로 등장하는 것 같다. 반면 사람을 잔잔하게 하는 스스로(自) 그런(然) 말들도 있다. 유재영 시인이 17년만에 내놓은 시집 ‘지상의 중심이 되어’는 시종 가만가만한 음성과 손짓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내키면 따라오라는 식이다.

‘검정염소가/언문체로/울고 있다/제비꽃 핀/언덕으로/누군가와/헤어지고 가는/사람/뒷모습이/아름답다//-흔들리는/작은 어깨’(다목리 입구)

눈 밝은 독자라면 느낄 것이다. 시조시인으로서의 오랜 연마를 거친 그의 시행속에 3·4 혹은 4·4조의 호젓한 리듬이 안온하면서 절묘한 흔들림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시인의 손짓에 따라 이끌려간 세계는 햇빛이 환하다. 그러나 그것은 환희의 표정으로 다가오는 밝음이 아니라, 오히려 비애의 표정을 말갛고 투명하게 드러내는 광휘이자 반짝임이다. ‘강을 따라 기차는… 마을 입구로 들어서고… 인플루엔자를 앓고 있는 백양나무… 아래… 조용히 누워 있는… 낯익은 생각들… 간이역 의자에는… 오늘도 그대의 하늘이… 보드랍게 구겨져 있다…’(간이역) 이라는, ‘꿈 같은 절망’ 연작에서 특히 그러하다.문학평론가 김재홍 (경희대 교수)은 ‘낡은 듯이 보이지만 투명하고 맑은 감각의 울림을 지니고 있기에 그의 시는 깊고 따뜻한 위안과 공감을 일으킨다’고 평한다. 시와시학사 펴냄.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