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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출판통신/도쿄에서]이연숙/'타케미츠 토오루 저작집'

입력 | 2000-05-05 20:04:00


▼'타케미츠 토오루(武滿 徹)저작집'/신죠샤(新潮社) 펴냄▼

1996년 2월 65세로 세상을 떠난 타케미츠 토오루(武滿 徹)는 일본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곡가이다. 현대음악이라고 하면, 흔히들 난해해서 가까이 가기도 힘들다고 하지만 타케미츠의 작품은 대부분이 CD로 나왔고 연주회에도 자주 등장하는 등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타케미츠의 음악이 감미로운 선율이나 정겨운 리듬만으로 가득 차 있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는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다.

타케미츠에게 중요했던 것은 ‘음악’이 아니고 ‘음(音)’, 즉 ‘소리’ 그 자체였다. 그가 전 생애를 바쳐 도달하려고 했던 것도 ‘음악’을 넘은 ‘소리’의 세계였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 ‘현악을 위한 레크램’에 대해 “시작도 끝도 확실치 않은, 인간과 세계를 꿰뚫으면서 흐르고 있는 음의 강줄기의 한 가닥을 우연히 끌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음악’은 인간이 만들어 낸 규칙이지만, ‘음’은 세계 그 자체 속에 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곡가는 ‘음악’을 만들 것이 아니라 세계에 흐르고 있는 ‘음의 강소리’에 겸허하게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타케미츠의 작품 속에서는 ‘음’ 하나하나가 작곡가 개인의 표현 의도에서 해방되어 독자적인 생명체로 자유롭게 운동한다. 우리들은 그 작품 속에서, 마치 현미경 속의 분자운동을 보듯, ‘음’이 증식 분열하면서 한 덩어리가 되어 가는 모습을 들을 수 있다. 이처럼 음악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악음(樂音)’과 ‘잡음’의 구별이 아니라 ‘음’과 ‘침묵’ 사이의 드라마라는 것을 타케미츠의 작품은 우리들에게 가르쳐 준다.

그렇다면 ‘침묵’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과연 ‘침묵’은 존재하는 것일까? 아무리 귀를 틀어 막아도 우리 몸속을 흐르는 혈액의 흐름, 심장의 고동소리가 들려 오질 않는가? 또 인간의 빈약한 귀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소리, 소리들로 이 세계는 충만되어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침묵이란 음의 죽음이 아니라, 음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음은 침묵에서 나서 침묵으로 돌아 간다. 타케미츠의 작품 속에서 우리들은 생생한 음의 탄생 광경을 경험함과 동시에, 그 배후에 있는 광대하고 무한한 침묵의 세계에 접할 수 있다.

또 한편, 타케미츠는 명석한 언어로 음의 세계의 비밀을 표현해 낸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작품을 말로 해설하지는 않았다. 그는 음과 언어라는 두 세계의 어느 한편에 기울어지는 일이 없이, 두 세계를 자유롭게 왕복했었다. 전 6권인 ‘타케미츠 토오루 저작집’은 보기 드문 표현가의 귀중한 기록이다.

이연숙(히토츠바시대교수·사회언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