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北京)대 유학생 김모씨(40)는 재작년 겨울 10개월된 갓난 딸이 급성폐렴에 걸려 곤욕을 치렀다. 한달이나 계속됐던 딸의 고열과 기침으로 부부가 생병을 앓았다. 원인은 대기오염에 따른 호흡기 질환이었다.
당시 시내에는 먼지와 아황산가스가 뒤섞인 황색 모래바람이 연일 계속돼 시당국이 ‘외출을 삼가라’는 지시를 내렸다. 중국 정부가 오염도에 따라 1등급부터 5등급까지 분류한 기준에 의하면 당시 베이징시는 위험수위인 5등급이 20여일간 계속됐었다.
대낮에 태양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을 정도로 하늘이 노랗게 뒤덮였다. 시 아동의원에는 한달사이 무려 1000여명의 어린이들이 진료를 받았고 이들중 절반이 입원을 했다.
김씨는 “20여일 넘게 철야근무를 하는 제약회사 직원들 모습이 TV에 방영되기도 했다”며 “하늘이 잿빛이어서 흑백 TV같다는 둥, 베이징에만 오면 목감기에 시달린다는 둥 하는 친지들 푸념을 더 이상 엄살로 묻어둘 수 없었다”고 한다.
매년 겨울과 봄이 되면 베이징 시민들은 먼지 황사 스모그 매연 등이 섞인 대기오염과 전쟁을 치른다.
▼초등생들 "하늘은 회색"▼
실제로 기자는 연일 뿌연 하늘을 보면서 그곳 초등학생들이 하늘을 그릴 때 파란 물감이 아니라 회색 물감을 쓴다는 중국 국영 CCTV 공익광고 내용이 과장이 아님을 실감했다.
탁한 공기 속에서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목이 칼칼하고 눈도 쓰리다. 단박에 까매진 옷깃을 보면서 차라리 서울의 공기가 그리웠다. 2년째 모기업 베이징지사에 근무하고 있는 이모씨는 “처음에는 목이 쉬고 감기가 자주 오는 정도에 그쳤으나 1년전부터는 만성기관지염과 잦은 기침 때문에 밤잠까지 설칠 때가 많다”며 “고민 끝에 외곽 지역으로 집을 옮겼다”고 말했다.
베이징의 대기오염은 정말 ‘살인적’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세계은행은 97년말 발표한 ‘클린 워터,블루 스카이’라는 보고서에서 연간 17만명의 중국인들이 대기오염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또 란저우(蘭州)와 선양(瀋陽) 등의 어린이들 대부분이 과다한 혈중 납농도로 두뇌발달 장애를 일으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매년 산성비 피해로 주요 경작지의 10%이상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까지 더하면 중국의 공해는 거의 전천후에 가깝다.
지난해 2월 중국 정부는 베이징시 대기오염수치를 조사(81년)이후 처음 발표했다.
우선 부유분진(TSP) 농도가 중국이 자체 개발한 대기오염지수(API) 전체 5등급중 4등급에 근접했다. 4등급은 미국 기준으로 환산할 때 ㎥당 875㎍의 매연 먼지 모래 등의 미세입자가 들어 있다는 것으로 세계보건기구(WHO) 최대 허용치보다 무려 10배가 높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작년 평균 분진 농도는 64㎍(기준치 150㎍)이었으니 베이징의 먼지 오염이 얼마나 심한지 짐작할 수 있다.
▼화석연료-車배기가스 주범▼
또 아황산가스는 ㎥ 당 90㎍이었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환산하면 무려 0.034¤으로 작년 국내 평균 0.007¤의 5배 수준이다.
비단 베이징만이 아니다. 98년 세계은행은 세계 10대 대기오염 도시중 5개가 중국에 몰려 있으며 상하이(上海) 충칭(重慶)등의 대기오염 농도가 WHO 기준보다 4∼5배나 높다고 분석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전세계 배출량의 13.4%로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대기오염의 가장 큰 주범은 석탄이다. 베이징 시내에는 건물 뒷편에 석탄을 산처럼 쌓아놓은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에너지원의 70%를 석탄으로 쓰는 중국은 전세계 석탄소비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석탄의 질도 문제다. 98년 일본과학기술정책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중국 석탄의 황 함유량은 평균 1.35%로 한국(0.74%) 일본(0.67%)보다 월등히 높다.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공장에 전기집진장치나 탈황장치도 거의 없다.
급속한 산업화의 길을 걷고 있는 중국에서 최근에는 자동차 배기가스도 새로운 오염원으로 등장했다. 71년 61만3000대에 불과했던 중국의 차량 등록대수는 현재 1700만대 가량으로 폭증했다. 차량들이 대부분 노후하고 매연저감장치도 없어 엄청난 가스를 뿜어낸다.
▼삼림남벌로 황사도 잦아▼
중국의 대기오염을 얘기할 때 고비사막 등에서 날아드는 황사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달 중국청년보가 밝힌 황사일지에 따르면 60년대 중국 전역에 8차례에 불과했던 황사는 70년대 13차례, 80년 14차례, 90년대 20차례로 늘었다. 이미 지난 달 2일부터 4월 9일까지 모두 7차례나 황사폭풍이 지나갔고 이로 인해 3월 27일에는 베이징에서 급성폐렴으로 2명의 사망자를 내기도 했다.
베이징대 유학생 추장민씨(환경과학센터 박사과정)는 “최근들어 황사가 잦아진 이유는 과도한 농경지 개간과 삼림 남벌등으로 국토가 사막화해 바람을 막아줄 방재림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며 “최근의 황사는 천재(天災)보다 인재(人災)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중국의 대기오염은 한반도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강건너 불’이 아니다. 한국과학기술원(KIST)이 작년 8월 발표한 ‘동북아 대기오염 장거리 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겨울철 중국으로부터 유입되는 대기오염물질의 양이 국내 발생분보다 무려 1.7∼1.9배에 이르며 바람을 타고 국내에 유입되는 아황산가스는 시간당 300∼340t에 이른다는 것.
한중대기과학연구소 정용승 교수(한국교원대)는 “아황산가스 일산화탄소 탄화수소 및 오존계통의 광화학물질 등은 중력에 따라 바람이나 기류를 타고 이동하는데 한반도에는 편서풍이 불기 때문에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며 “한반도 대기오염 물질의 20∼30%는 중국의 영향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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