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영화 ‘칠수와 만수’를 촬영하던 어느 날 아침. ‘학자나 신부님’같은 이미지의 안성기 선배가 본인의 전날 밤 꿈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꿈 속에서 아주 예쁘고 매혹적인 여인이 유혹했다고 합니다. 안선배는 꿈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냐”며 몹시 갈등하며 망설였다고 합니다. 결국 가족 생각 때문에 그 여인을 외면했답니다.
▼안성기씨도 욕할줄 아는 인간▼
‘투캅스’를 촬영할 때인 것 같습니다. 거리 장면을 촬영하던 중 자동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신호를 무시한 채 몹시 위험하게 우리 앞을 지나갔습니다. 선배님은 혼자 말처럼 욕 한 마디를 짧게 내뱉었습니다. 안선배의 입에서 욕이? 그것이 15년 가깝게 옆에서 지켜본 제가 안선배의 입에서 들은 처음이자 현재까지는 마지막 욕이었습니다.
국민배우 안성기는 ‘와! 저 사람이 어떻게 욕을’하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가정에 충실하고, 일에 성실하며, 사람좋은 웃음에, 원만하고 매너좋고….
저는 그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몇 가지 추가하고 싶습니다. 그도 욕할 줄 알고, 유혹에 갈등하며, 새벽 촬영 때 늦잠 자고 싶어하고, 미워하는 사람 있으면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사춘기가 지나기 전까지 저는 어머니가 생선의 고기 부위보다는 생선 뼈를 발라 먹는 걸 , 더운 밥 더운 반찬보다는 찬 밥에 식구들이 남긴 반찬을 비벼 드시는 걸 더 좋아하는 줄 알았습니다. 철들면서 나중에야 어머니도 생선의 고기 부위에 더운 밥과 더운 반찬을 더 좋아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상상하건대 천하장사 헤라클레스도 낮잠 잘 때 강아지풀로 코를 간질이면 재채기를 했을 것이고, 성인인 부처님도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가 저렸을 겁니다. 힘들 때 사람의 느낌은 똑같은 겁니다. 그러나 겉으로 달라보이는 이유는 자제하느냐 표현하느냐, 자제한다면 얼마나 자제하고, 표현한다면 얼마나 표현하느냐의 차이일 겁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인격있는 착한 사람’을 ‘약한 사람’으로 여길 뿐 그들의 훌륭한 자제력은 알아주지 못합니다. ‘착한 사람’의 반대는 ‘나쁜 사람’이고, ‘강한 사람’의 반대는 ‘약한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결국 ‘착하면서도 강한 사람’이 수없이 많다는 걸 모르나 봅니다.
부드럽고 상냥하고 예의바른 것은 이미 강한 ‘내공’이 있기 때문에, 그 자신감에서 비롯된 여유의 표현이 아닐까요? 아이가 울기 전에 젖을 미리 줬더라면 아기는 계속해서 방실방실 웃었을 텐데. 이미 울기 시작한 다음엔 젖을 주면서도 아기에게 인심을 잃게 됩니다.
▼인내는 자신감서 비롯된 여유▼
그토록 방실방실 웃던 국민의 웃음의 의미를 미리 알았다면 지금처럼 낭패본 정치인은 없었을테고, 진작 그 숨겨진 강함을 느꼈더라면 지금처럼 비참하게 세월을 보내는 독재자들도 없었을 겁니다.
참지 못하고 우리를 뛰쳐나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도 보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서 꾹꾹 인내하고 있는 아흔아홉 마리 양의 숨겨진 강함을 더 새겨봐야 하지 않을까요?
박중훈 joonghoon@serome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