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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나는 세상]입양공개 신주련씨 부부

입력 | 2000-05-12 19:56:00


하영(2·여)이는 1년에 생일잔치를 두 번 한다. 하루는 세상과 인연을 맺은 날이고 다른 하루는 신주련(辛株蓮.39.여.대전 서구 둔산동)씨의 딸로 인연을 맺은 날이다.

"엄마랑 아빠는 하영이를 입양했는데, 방법만 다르지 하영이도 하느님이 엄마에게 딸로 주신 소중한 아기란다."

98년 5월 하영이가 집에 온 뒤 신씨는 가끔씩 이렇게 이야기해준다. 처음에는 '입양'이라는 말이 차마 입에서 안 떨어졌다. 하지만 하영이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전혀 이상하거나 부끄럽게 느끼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싶었다.

올 3월9일 하영이의 동생이 된 아영이는 13일 백일잔치를 한다. 아영이도 내년부터 생일잔치를 두 번씩 하게 될 것이다.

신씨와 남편 전순걸(全順傑·39)씨는 교회의 지인 소개로 만나 87년 결혼했다.

2년 후 아들 현찬이가 태어났다. 당시 형편이 어려워 아이를 더 낳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과 헤어져 끼니도 못 챙기고 이곳저곳을 전전해야 했던 전씨에게 힘겹게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일 수 없었다.

전씨 부부는 돈을 어느 정도 벌면 꼭 보육원을 짓자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어느 날 전씨는 우연히 TV에서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프로그램을 봤다.

문득 '늘 말만 했지 실제로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육원을 당장 차리는 대신 아이를 한 명 입양하기로 했다.

주위에서는 '아이가 나중에 비뚤어지면 어쩌느냐' 혹은 '남의 애 데려다 키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며 걱정했다.

다행히 전씨와 신씨의 부모님들은 반대하지 않고 '알아서 하라'고만 했다. 전씨 부부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하영이의 부모가 됐다.

"하영이를 키워보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보육시설보다 '가정'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고아원을 만들려던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전씨의 설명이다.

"지난달 15일에 엠팩(MPAK·한인입양홍보회·www.mpak.co.kr)에서 주관하는 양부모 모임에 갔었어요. 한 어머니가 입양사실을 숨기고 친아들인 것처럼 키우는데, 아이가 알게 될까봐 걱정을 하더라고요. 그 때문에 이사도 많이 다니고 한 모양이에요."

신씨는 "한국사람들은 워낙 입양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이 많아 입양하는 사람이 적고, 또 한다 해도 애써 숨기려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1726명의 아이가 국내에서 입양됐지만 해외입양 2409명에 비해 여전히 저조한 수준이고 요보호 아동 7693명에는 턱도 없이 미달한다는 것.

"복지회 간사에게 들었는데 90년부터 99년까지 국내 입양아수가 해외입양아수의 절반 수준이고 장애아는 해외로 매년 800∼1000명 입양되는데 국내에서는 10∼30명 입양된다고 하더군요. 또 대부분 친자 입양으로 입양 사실을 극비로 하려고 해 입양기관과도 연락을 두절한다고 해요."

이제 신씨 부부는 공개입양의 전도사가 됐다. 전씨와 같은 회사에 다니는 한 사람도 전씨를 보고 최근 입양절차를 밟고 있다.

"입양 사실을 공개하고 양부모 모임 같은 데도 나가보면 서로 힘이 많이 돼요. 먼저 입양해 아이를 키운 사람들의 조언도 들을 수 있고요. 또 저희를 보고 입양을 결정하는 사람이 있으면 보람도 느끼죠."

전씨는 입양이 '불쌍한 아이를 돕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입양은 한가족의 인연을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아이들이 있으니까 더 성실하고 최선을 다해 살려고 노력하게 돼요. '부모'가 될 수 없다면 입양은 할 수 없죠. 하느님이 인연을 주신다면 아이를 또 입양할 생각이에요." 신씨의 말이다.

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