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소한 체격에 ‘깡’있을 듯한 외모, 삶에 대한 열정이 묻어나는 목소리, 그리고 그렇게 보이는 삶들…
몇 년 전 공지영 소설 ‘고등어’에 나온 은림이가 저에게는 그런 이미지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기분나빠할 수도 있지만 그녀를 보면서 은림이를 떠올립니다. 물론 그녀는 학생출신 운동권도 아니고 죽지도 않았고 실패한 결혼생활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노동정보화사업단(이하 노정단)에서 일하는 김혜경씨. 그녀입니다.
그녀는 노동자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무자동화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청년단체(여기서 만난 ‘형’과 1년 전에 결혼을 했구요)에서 일했던 그녀는 2년 전 웹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들락거렸던 노정단에서 일을 하게 되었답니다.
“처음에 큰 뜻이 있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 말에 솔직히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고민해 나가야 할 부분도 많고”
그러면 우선 ‘노동정보화’가 뭔가요?
“노동운동 진영 내에도 정보화가 필요하죠. 정보화는 우선은 자본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정보를 접하는 데 노동자들은 소외되어 있는 측면이 많아요. 가령 남들처럼 정보를 접하는 데 기본적으로 컴퓨터가 있고 통신을 할 줄 알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환경, 그야말로 ‘도구’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죠. 노동운동 진영 내에서는 그런 문제부터 해결이 되어야죠. 그리고 그야말로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서로 공유하는 일, 자료공유를 기본으로 하면서 각 노동조합끼리 소통을 하는 것, 최종적으로 현실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리하자면, 노동운동 진영 내의 의사소통을 위한 제반조건을 지원해주는 일. 그게 지금까지의 노정단이 존재하는 근거입니다.
그러면 이를 위해서 3년 넘도록 노정단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오고 있냐면요,
“우선은 데이터베이스 작업, 노동조합 홈페이지 제작, 네트워크 설비, 컴퓨터 교육을 하죠. 노동조합에 컴퓨터를 보급, 설치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를 정리해주고,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제작해줍니다. 요즘은 컴퓨터는 많이 있어서 설치하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어요”
교육하는 내용? “노동자들이 처음에는 컴퓨터를 잘 모르니까 ‘윈도우부터 통신까지 가르쳐주세요’해요. 요즘은 인터넷에 관심이 많구요”
그간 노정단은 개개인의 서랍 속에 쌓여있는 노동운동 팜플렛들과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의 세계’등을 정리해왔답니다. 민주노총, 건설연맹 등 다수의 연맹 네트워크 설치를 비롯해 그 유명한 안티포스코 홈페이지도 여기서 제작했다는군요. 단위 노조까지는 아니지만 웬만한 연맹 단위에서는 노정단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많지 않습니다.
“노동조합의 정보화는 기술적 완성도 보다는 현실적인 운동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가 관건이죠. 그래서 노동자들의 삶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소화하느냐가 관건이구요”
이런 노동자간 의사소통의 문제나 노동정보화를 위한 그녀의 고민을 담아내는 공간이 최근 창간한 웹진 ‘노동정보통신’입니다.
노동자간에 의사소통을 하는 데 현재 노조의 모습에 대해서 그녀는 다소 비판적입니다.
“예를 들어 노조게시판이 열려진 공간으로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직장생활에 대한 불만같은 거 누구랑 얘기해요? 게시판에서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데 노조활동에 도움이 안 된다고 지워버리는 거, 폐쇄적이라고 생각해요. 그야말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작용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정화될 수 있는데도 그것을 기다릴만한 여유가 없는 거죠.”
요즈음 그녀는 노동운동 진영의 정보화를 위해 웹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고민이 많답니다.
참세상방송국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방송을 하고 있는 그녀는 작년 ‘여성활동가모임’도 꾸렸습니다. 국제정책연대센터, 진보네트워크, 청년생태주의자 KEY를 비롯한 단체 여성활동가 20여명이 운동권 내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깨보자고 모인 거랍니다.
직장생활을 비롯해 살아가면서 느낀 문제들을 조금씩 풀어나가려는 그녀의 노력, 일단 노정단 활동동기가 어찌됐든 삶과 노동자에 대한 애정이 없이 가능한 것이었을까요?
신은/동아닷컴기자 nsilv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