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이 끝난 후 뒷풀이로 노래방이라도 갈 때면 사람들은 저와 함께 가기를 원하는 편입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면 거의 어김없이 저에게 ‘랄랄라’ 춤, 혹은 테크노 춤, 또는 노래를 하라고 합니다. 저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저 앉아서 분위기를 즐기고 싶을 때에도 저를 원하는 사람 앞에서 신나게 노래하며 춤을 춥니다. 저는 이렇게 피곤(?)하게 삽니다.
▼예술은 사람들에 '기쁨' 주는것▼
더운 여름에 개미는 허리가 부서져라 열심히 일합니다. 이 때 배짱이는 바이올린을 켜면서 열심히 놀고 있습니다. 개미는 노동하느라 땀을 흘리고 배짱이는 노느라 땀을 흘립니다. 눈 내리는 추운 겨울이 왔습니다. 개미들은 동냥을 나온 배짱이들을 문전박대하기는 커녕, 배짱이들을 모셔놓고 그들이 거둔 양식과 옷을 듬뿍 나눠주며 감사해 합니다. 그 더운 여름날 배짱이의 음악소리가 없었더라면 쓰러져 죽었을 거라고 감사해 합니다. 배짱이 또한 자기들이 열심히 놀아줌을 인정해준 개미에게 감사하며, 내년 여름 또 어떻게 재미있고 기쁘게 놀아줄까를 연구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동서 냉전의 시대를 지나 정보지식을 기반으로 더불어 사는 화합의 시대를 강조해온 어느 학자의 생각입니다. 이는 전쟁 때 총을 가지고 싸워야만 참 군인이라는 기존 생각에서 전쟁 때 진군 나팔을 부는 나팔수 군인도 참 군인으로 인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무비스타 배짱이’들은 대공황 이후 실의에 빠진 미국인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안락의 도피처를 주었습니다. 2차 대전후 삶에 지쳐버린 유럽인들에게는 찰리 채플린이라는 ‘배짱이’가 웃음 뒤에 감추어진 눈물로 그들과 함께 울고 웃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웃음이던, 눈물이던, 휴식의 기쁨을 주었던 것입니다.
예술은 그다지 어려운 말이 아닌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성적 창의를 통해 기쁨을 주는 것이 과학이라면, 감성적 창의를 통해 기쁨을 주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다보탑과 에펠탑을 통해 ‘보는 기쁨’을, 서편제 파바로티를 통해 ‘듣는 기쁨’을, 햄릿을 통해 ‘슬픈 기쁨’을, 코미디언 배삼룡을 통해 ‘웃는 기쁨’을 느끼지 않습니까?
환경미화원님들께 사는 곳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해주어서 고맙다라는 인사를 드리면 가장 기뻐하실 것처럼, “당신 영화 재밌게 봤어” “두 시간 동안 즐거웠어”라고 관객님들이 말해주실 때면 일차적 목표를 달성한 저로서는 하늘을 날듯이 기쁩니다.
▼배우는 순간 순간 최선다해야▼
연기는 ‘주어진 가정(假定)을 현실로 충실히 믿고, 타인의 인생을 본인의 인생처럼 느끼고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살인자를 용서하지 않되 이해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배우가 된다고 합니다. ‘운명 교향곡’의 듣는 기쁨을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던 베토벤 ‘배짱이’ 선배님처럼 저도 아파하며 열심히 놀겠습니다. 어떤 삶에도 충심으로 귀기울이며 개미님들이 겨울에 주신 양식과 옷에 교만하지 아니하며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연구하며 놀겠습니다.
노는 걸 천직으로 아는 ‘진정한 광대’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추신: 저…앞으로…혹시… 시간되시면 제가 열심히 논 것을 봐주시시러 와주시시지 않으실래요? 우헤헤헤(부끄럽고 아양떠는 목소리로).
박중훈(영화배우) joonghoon@serome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