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에 평가해 달라.”
95년은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32·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다저스에서 13승6패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미국 프로야구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차지한 해다.
같은 동양인 투수로 비교 대상이었던 당시 마이너리거 박찬호(27·LA다저스)는 “둘 중에 어떤 선수가 더 팬들에게 기억되는지 나중에 지켜보면 알 것”이라고 자신했었다.
그의 말은 정확했다. 10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메이저리그에선 벌써 누가 더 훌륭한 투수인지 결론을 내린 상태다.
98년부터 내리막길에 접어든 노모가 뉴욕 메츠(98년)-밀워키 브루어스(99년)-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등 팀을 전전하고 있는 반면 박찬호는 3년 연속 두자리 승리를 따내는 등 다저스의 기둥 투수로 자리잡았다.
통산 승수에선 아직 노모가 62승51패로 51승36패의 박찬호를 앞서지만 주무기인 ‘포크볼’의 구질이 노출돼 ‘밑천’이 떨어진 노모가 완연한 쇠퇴기임을 감안할 때 동양인 투수 첫 100승은 날로 성장하고 있는 박찬호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노모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올시즌 일본인 투수들은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 뉴욕 양키스에서 2년 연속 두자릿수 승리를 따냈던 이라부는 올해 몬트리올로 이적한 후 1승3패에 평균자책이 무려 7.88에 이른다. 15일 시카고 컵스전에서도 선발로 나가 2와 3분의1이닝 동안 2홈런 포함, 7안타 6실점의 뭇매를 맞고 조기 강판됐다.
뉴욕 메츠에서 콜로라도로 트레이드된 요시이 역시 1승4패로 부진.
일본 프로야구에서 10년 동안 229세이브를 따낸 뒤 야심차게 미국 무대에 진출한 사사키 가즈히로(시애틀)는 1승2패4세이브 평균 자책 7.36으로 메이저리그의 ‘두꺼운 벽’을 실감중이다.
반면 한국인 투수들의 인기는 ‘상한가’.
박찬호 외에 다이아몬드백스의 ‘비밀 병기’ 김병현(21)은 애리조나 사막에 ‘BK(김병현의 애칭)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16과 3분의2이닝 동안 삼진이 무려 28개로 이닝당 삼진율(1.68)은 메이저리그 최고. 상하 좌우로 꿈틀거리는 변화무쌍한 구질과 언더핸드스로로는 믿기 힘든 시속150㎞의 빠른 공을 바탕으로 이제 21세의 어린 나이에 마무리 투수라는 중책을 맡고 있다.
마이너리그에선 보스턴 레드삭스 트리플A의 김선우가 5승 무패의 뛰어난 성적으로 메이저리그 승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양국 투수들의 차이는 젊은 한국 선수들이 스피드와 힘을 앞세우는데 비해 일본 선수들은 기교와 컨트롤을 내세운다는 점. 따라서 성장 가능성으로 보면 한국 투수들이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김상수기자〉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