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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 분쟁 이유]이스라엘 東예루살렘 집착때문

입력 | 2000-05-16 19:12:00


15일 이스라엘 점령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것은 지지부진한 중동 평화협상에 대한 팔레스타인측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양보를 모르는 이스라엘에 대한 불신감과 물러서기만 하는 팔레스타인 지도부에 대한 경고의 뜻이 깔려 있다. 4년만에 벌어진 최악의 유혈 사태는 중동 평화협상의 장래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팔레스타인은 1993년 이스라엘과 체결한 오슬로협정에 따라 5년의 자치기간을 거쳐 지난해 5월1일 나라를 세웠어야 했다. 오슬로협정은 1967년 제3차 중동전 당시 이스라엘이 점령한 △동예루살렘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의 상당 부분을 반환해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건설한다는 내용.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전 이스라엘 총리의 강경책에 밀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은 독립국 창설을 1년 연기했다. 이후 양측은 미국의 중재로 98년 와이리버협정을 체결하고 지난해 9월 이를 보완한 ‘와이Ⅱ’협정을 맺었다. 이에 따라 양측은 올 9월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창설키로 했다.

그러나 평화협정 서명을 4개월 가량 남겨 놓은 지금 이렇다 할 성과를 전혀 거두지 못하고 있다. 몇 개월 뒤 나라를 갖게 될 것이라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

특히 이스라엘측은 팔레스타인이 수도로 삼으려는 동예루살렘을 내놓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했다. 에후드 바라크 총리는 15일 불쑥 아부디스 등 동예루살렘에 붙은 3개 마을을 팔레스타인에 양도하겠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뜻은 결국 동예루살렘을 내줄 수 없으니 인접한 마을 3곳을 묶어 수도를 세우라는 것으로 해석됐다.

게다가 팔레스타인지도부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공식 협상 채널과는 별도로 이스라엘과 비밀 협상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조건부 제의에 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이 52년전 이스라엘 건국으로 수십만명의 난민이 발생한 일을 되새기자며 ‘알 아크바(대재앙)’를 외치는 대규모 시위를 벌임으로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협상 전망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다.

▼동예루살렘 어떤 곳인가▼

동예루살렘의 역사는 유대의 다윗왕이 처음 나라를 세운 BC 99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대인들은 이후 바빌론과 로마의 박해를 거치면서도 예루살렘을 민족의 구심점으로 삼아왔다. 이후 예루살렘은 AD 638년 페르시아 제국에 점령당하면서 아랍인의 땅이 됐다.

유대인들이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할 당시 유엔은‘동예루살렘을 국제관할 아래 둔다’고 결정했다. 아랍인과의 잠재적인 종교 정치적 갈등 때문. 그러나 이스라엘은 67년 제3차 중동전쟁 때 이곳을 병합해버렸다.

동예루살렘 내 성곽으로 둘러싸인‘구시가지’에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몰려 있다.

기독교는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어갔다는‘십자가의 길(비아 도로로사)’과 예수가 숨을 거뒀다가 부활했다는‘성분묘 교회’를 신성시한다.

유대교는‘통곡의 벽’을 최고의 성지로 여긴다. AD 70년 로마군이 유대교회를 파괴하고 남은 잔해가 바로 통곡의 벽. 지난달 로마 가톨릭교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런 잘못을 인정하고 통곡의 벽 앞에서 용서를 빌었다.

이슬람교의 성지는 통곡의 벽 위쪽 언덕에 있는 황금사원인‘바위의 돔’과 알 아크사 사원. 이슬람교 창시자 마호메트가 승천한 곳으로 이슬람 4대성지 중 하나. 구시가지는 지금도 유대 아랍 아르메니아 기독교계가 구역을 나눠 함께 살고 있다.

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