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비가 하얗게 내리던 날…’(잃어버린 우산). 82년 대학가요제에서 이 노래로 동상을 받으며 데뷔한 가수 우순실. 그 뒤 ‘잊혀지지 않아요’ ‘빨간 장화’ 등 애틋한 발라드로 여성팬들의 관심을 모았던 그는 91년 결혼 뒤 돌연 가요계를 떠났다. 그러나 그가 노래를 떠난 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 있었다. 아들 김병수(9)군이 출생 직후 뇌기능의 상당 부분을 상실해 아직도 회복하지 못한 채 엄마의 애를 태우고 있는 것.
KBS2 TV ‘영상기록 병원 24시’(수 밤 9·50)는 17일 아들의 치료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진 가수 우순실의 24시간을 담았다. ‘영상기록 병원 24시’는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의 투병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보통의 건강한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우는 프로다.
우순실은 임신한지 아홉 달만에 갑자기 산통을 느껴 병원으로 가던 차 안에서 병수를 낳았다. 그런데 아이는 생후 4개월 무렵 뇌수종과 두개유압증(천문이 일찍 닫혀 뇌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병)으로 두 번의 뇌 수술을 받았지만, 9년이 지난 지금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차 중 분만’이 원인은 아니라는 게 병원의 진단이지만 아픈 아이를 보는 엄마의 마음에는 죄책감이 가시질 않는다.
아이는 뇌기능이 10%만 살아 있어 소리만 겨우 들을 뿐이다. 앉지도 서지도 못한다. 의사 표현도 ‘싫다’를 나타낼 정도. 그나마 몸을 뒤로 뻗치는 게 전부다. 음식도 죽만 겨우 먹는데 그것도 엄마가 떠먹여줘야 한다. 그래서 우순실은 간혹 라이브 공연을 하더라도 아이를 데리고 간다. 아이는 엄마가 아니면 잘 먹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의 병세는 좀처럼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주일에 한 번씩 재활의학과에 가지만 완치를 장담하지 못한다.
우순실은 아이를 돌보면서 많이 울었고, 너무 힘들어 지칠 때 아이를 원망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더구나 아이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처럼 여겼던 노래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우순실은 이제 자신을 추스르고 노래에 다시 매진하려 한다. 지난해에도 음반을 낸 적이 있는 우순실은 “말못하는 병수가 눈짓과 몸짓으로 전하는 사랑이 내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며 “이번에는 병수가 좋아하는 희망의 노래를 부르겠다”고 말한다.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