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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의 세상스크린]관객이 기뻐할때 배우는 행복

입력 | 2000-05-21 20:27:00


4월 18일이었던가요?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선 화려한 대종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입구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내리자 수많은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러주셨습니다. 최소한 100개가 넘는 카메라가 제각기 소리를 달리하며 플래시를 터뜨렸고, 각 방송사 연예프로그램팀에서는 눈부신 조명을 들이대며, ‘이번에 수상을 얼마나 예상하느냐’며 인터뷰를 요청해 왔습니다. 곳곳에서 제게 악수를 청해왔고, 저는 그렇게 화려하게 2000년 대종상을 또다시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신인땐 賞못타 울기도▼

문득, 11년 전 ‘우묵배미의 사랑’으로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때, 꼭 받을 줄만 알았는데 다른 선배님께 밀려 떨어졌던 기억이 났습니다. 전 그 날 관객과 영화인이 모두 떠난 국립극장 무대 뒤에서 안성기 선배님을 붙잡고 울먹였습니다. 1994년 대종상 시상식날 ‘투캅스’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선정된 저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열연해주신 다른 선배의 수상을 예상하며 축하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 날은 시상자가 “남우주연상 박중훈”이라고 외쳐주었습니다. 그 선배님껜 미안했지만 기쁘고 신났습니다. 그 외에도 수 십 번의 영화 시상식에서 후보에 오르고 20여개 넘는 상도 타봤고, 그 이상 떨어져도 봤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부터인가 시상식장 가는 마음이 예전에 비해 담담해져 있습니다.

드디어 2000년 대종상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발표됐습니다. 영광은 ‘유령’에서 열연하신 최민수 형에게 돌아갔습니다. 서운했지만, 더 이상 슬프지 않았습니다.

3월 프랑스에서 도빌국제영화제가 역시 화려하게 펼쳐졌습니다. 감사하게도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남우주연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뻤지만, 더 이상 환호하지 않았습니다. 상을 받았다고, 또는 안받았다고 해서 제가 했던 연기 자체가 변하는 게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묵배미의 사랑’에서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도 성실히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많은 관객들께서 기뻐해주셨고, 그것이 배우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상도 받고, 인기도 얻고, 돈도 벌게 된다면, 더 바랄 것 없는 ‘금상첨화’이겠지요. 그러나 그것들을 못가졌다고 마음이 다치고, 얻었다고 해서 우쭐해진다면 배우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겠지요? 박세리 선수는 한 타 한 타에 오로지 볼을 잘 맞추겠다는 생각으로 정신을 집중해 스윙을 하고, 그렇게 9홀을 걸으며 18홀을 돌며 하루를 지나 나흘이 지난 뒤 비로소 LPGA 우승을 안게 되었을 겁니다. 아마도 한 타 한 타에 우승을 생각하며 효심을 심고, 애향심, 애국심에 불타고, 그러지는 않았을 겁니다.

▼큰 영광은 성실하면 절로▼

영광된 결과는 성실히 살다보면 따라와주는 게 아닐까요? 진정으로 영광된 결과를 원한다면 그것을 아예 초월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연연해 하지 않을 수는 있어야 할 것입니다. “중훈아! 애비한테 효도하려면 다른 길 없다. 네가 성실히 잘 살아라. 그러면 자연히 효도가 된다.” 만질 수 없는 아버지가 자꾸 보고 싶어집니다.

박중훈joonghoon@serome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