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도쿄 니혼바시의 한 백화점에서 불이 났을 때 여성 점원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기모노 차림의 그들은 속에 팬티를 입고 있지 않아 뛰어내리기를 주저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 기모노 속에도 팬티를 입게 되었다지만 술집 여성들은 지금도 기모노엔 팬티를 입지 않는다고 한다. 팬티 선이 드러날까 염려해서다.
옛 일본에는 속적삼 격인 ‘하다 쥬방’과 속치마에 해당되는 ‘나가 쥬방’(그림)은 있었지만 팬티는 없었다. ‘고시 마키’라는 허리에 두르는 속옷이 있었으나 스커트 모양의 옷이지 팬티는 아니다. 멋쟁이들은 이 고시 마키 위에 ‘게다시’라는 속옷을 입기도 했다. 고시 마키와 똑같은 형태지만 빨강 등 화려한 천으로 만들어 밖에 드러나 보이게 한 것이다. ‘노출 패션’이었다.
에도시대에는 불이 났을 때 고시 마키를 벗어 지붕 위에서 흔들면 더 이상 불이 번지지 않는다는 미신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 역시 속옷 노출 행위의 하나다.
일본은 예로부터 성에 대해 개방적이었다. 우리처럼 유교사상이 철저히 뿌리내리지 않은 데도 원인이 있으나 팬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고도 한다.
최근 일본의 젊은 여성들 사이엔 ‘쇼오부 속옷’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승부를 거는 속옷이란 뜻으로, 애인과 지낼 때 입는 예쁘고 야한 속옷을 일컫는 말이다. 예전에는 속옷을 입지 않고 승부를 했지만 요즘은 속옷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것.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남성은 여성의 야한 속옷에 그다지 예민하지 않다나. 옛 일본여성들이 좀더 남성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일까.
김유리(패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