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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뜨는 카피 "이렇게 만들었어요"]윤미희-박광식

입력 | 2000-05-22 20:08:00


《광고가 세상을 담아낸다면 ‘뜨는’ 카피는 세상을 읽는 ‘코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두 카피는 한솔엠닷컴 018PCS광고인 ‘내가 니꺼야? 사랑은 움직이는거야’와 롯데칠성음료 ‘2% 부족할 때’의 ‘날 물로 보지마’. 10대를 주 고객으로 겨냥한 두 카피에선 각각 10대의 사랑과 우정의 세태가 엿보인다. 그러나 ‘최고의 유행카피’라는 동일선상에 놓여있는 두 카피를 쓴 이는 전혀 다른 색채의 남녀. 도대체 어떤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이 유행어를 만들어 냈을까.》

▼윤미희(27·코래드 대리)▼

사실 누구나 ‘움직이는 사랑’을 바라잖아요? 겉으로 드러내지 못할 뿐이죠.”

윤미희씨는 그러나 몇 해 전이라면 욕먹었음직한 문구라고 덧붙인다. 부도덕하다는 이유에서. 한 친구가 광고를 보고 말했단다. 우리 사회가 저런 얘길 매체에서 공론화할 수 있을 정도로 달라졌구나, 라고.

그는 카피성공의 조건은 ‘누구나 하고 싶지만 차마 못하는 말을 누가 먼저 이끌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소비시장의 주고객인 10대를 알기 위해 윤씨는 온갖 PC통신 채팅방의 ‘중딩방’이나 ‘고딩방’을 드나들며 10대를 가장, 채팅을 나눈다. ‘공개 사랑고백’이나 ‘나의 비밀 일기장’ 같은 코너들은 사연 하나하나가 드라마 그 자체. 사랑을 엿보는 이들은 행복한 결말보다는 이별이나 그로 인한 슬픔에 더 관심을 보였다. 온라인상에서 떠도는 온갖 작가미상의 유행어도 사람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읽는 ‘키’가 된다.

별명은 TV중독자. 남들은 공부하느라 TV시청을 자제하던 고교시절에도 하도 TV를 끼고 살다보니 광고란 광고는 다 외웠다. 첫장면만 보고 광고 알아맞히기가 동생과 즐겨하던 놀이.

그러나 대학시절엔 광고쟁이와 사범대생으로서 교사라는 직업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했다. 어느날 찾은 학생생활연구소에서 심리성격검사를 받은 뒤 갈등에 종지부를 찍었다. 추천직업으로 광고분야가 나온 것.

그 뒤론 ‘내 길은 이거야’라며 끊임없는 자기암시. 대학 3학년 때부터 광고회사의 취업설명회에 가서 신입사원 모집 포스터를 받아와 벽에 붙이곤 “난 저기서 일할 거야”라고 다짐했다.

“하나의 카피를 쓰기 위해 한 300개를 습작하죠. 힘들지만 카피를 통해 제 생각이 공감대를 얻으면 이게 보람이라고 생각해요.”

◇프로필◇

▽출신〓국어교육학과(91학번) ▽좌우명〓인간을 사랑해야 좋은 카피를 쓸 수 있다 ▽나의 대표작〓‘질주 본능, 라노스’(대우자동차 라노스) ‘안전은 당신만의 것이 아닙니다’(대우자동차 뉴프린스) ‘치아를 위한 좋은 습관, 덴티큐’(해태제과 껌) ‘내 안의 나, 젠느’(해태제과 초콜릿) 등.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의 1∼4월 4대 매체 광고비〓약 16억9000만원 ▽패러디〓‘직장은 움직이는 거야’‘민심은 움직이는 거야’ 등. 또 아내의 ‘내가 니꺼야, 난 친정에도 갈 수 있어’와 스토커의 ‘넌, 내꺼야! 넌 누구에게도 갈 수 없어’ 등 다양한 ‘버전’.

▼박광식(38·대홍기획 팀장)▼

성공 이유요? 카피보다는 자기네끼리 ‘왕따’시키는 상황설정이 요즘 젊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낸 것 아닐까요.”

‘2%…’ 이전, 음료광고의 일반적 패턴은 여자애들의 깜찍하고 산뜻한 분위기를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연출’. 실제로 버스나 지하철에서 맞닥뜨리는 10대 여학생의 분위기는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청 걸걸한데다 말꼬리잡아 면박주고 또 말꼬리 잡고…. 자기네들끼리만 있을 때 드러나는 그들의 문화를 광고에 연결시키는 게 핵심이라고 여겼다.

올 1월초 CF가 방영된 이후 판매율이 약 50% 성장했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스스로는 좋은 카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름답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사회현상이잖아요. 그런데 광고가 사회분위기를 더 그런 방향으로 유도할 수도 있거든요.”

그는 “사실 이런 카피를 쓰려고 카피라이터의 길을 걸은 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80년대의 영문학도이었던 박팀장은 “글로써 세상을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고 했다. “그 시대가 그랬잖아요”를 연신 되풀이 하며. 그래서 문단과 언론사를 기웃기웃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가장 상업적인, 그래서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광고로도 세상을 따뜻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발을 들여놨다. 글로써 세상과 소통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세상과 소통하는 경험을 쌓기 위해 그는 휴일이면 산에 오르고 절을 찾는다. 동료들 사이에선 ‘절박사’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속세를 벗어난 곳에서 ‘소통’의 원천을 찾는 역설을 믿는다.

“전 ‘겨울나그네’식의 감수성이 좋아요. 광고는 영비지니스라서 감각을 유지하기 정말 힘들죠. 하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카피를 쓸 때까진 계속할 겁니다.”

larosa@donga.com

◇프로필◇

▽출신〓영문학과(81학번) ▽좌우명〓독특한 발상의 전환이 좋은 카피를 만든다 ▽나의 대표작〓‘또하나의 원본’(롯데 캐논) ‘엄마, 청와대가 어디예요?/한글을 깨우치면 아이의 세상이 넓어집니다’(신기한 한글나라) ‘영웅본색의 주인공처럼, 사랑한다 밀키스’(롯데칠성 밀키스) 등. ▽‘물로 보지 마’의 1∼4월 4대 매체 광고비〓약 20억원 ▽최종 경쟁 카피〓‘물 먹지마’‘내가 물로 보이니?’‘물 타지마’‘그러니까 니가 2% 부족한 거야’‘물은 물이요, 2%는 2%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