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빛을 타고 흰 가루가 내려 앉는다. 보송한 파우더로 덮인 아기. 감독 비가스 루나의 시선은 세상 무엇도 닿은 적 없는 그 살색마저 속삭이듯 은밀하게 끌어 들인다. 관객들은 이 첫 장면에서 이미 관능의 시간을 겪을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비가스 루나는 가슴 한복판 유두를 뚫고 나온 젖줄기로 소년의 환상을 풍요롭게 하던 의 감독이므로. 어린 룰루가 경험 많은 파블로에게서 "8자를 그리듯" 허리를 움직이는 법을 배울 때 다채로운 성(性)의 탐험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것도 당연하다. 소녀의 나체를 탐욕스럽게 바라보기 보다 팬티 하나만 벗긴 채 음모를 면도하는 비가스 루나는 진정한 자극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는 숨기고 드러내는 완급을 조절하는 데 있어서만은 대가에 가깝다.
그러나 90년 작인 는 치명적인 결말에 이르도록 욕망을 방치하던 비가스 루나의 92년 작 에 비해 한참을 머뭇거린다. 경험 많은 파블로는 룰루를 자신만의 여자로 길들인다. 룰루는 남자의 성기가 일깨우는 희열에 눈떴지만 그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오직 파블로의 그것만이 필요하다. 은근했던 그들의 정사는 시작이 아니라 끝이었던 것이다. 제멋대로 달려가야 했을 는 욕망의 밑바닥을 드러내지 못한 채 그렇게 고정되어 버린다.
행복한 부부 생활에 안주하던 이 영화는 성욕을 느끼기 위해 여장남자를 구경하는 룰루에게 옮겨가면서 보다 극단적인 길로 나아가는 듯 하기도 하다. 부산스러우면서도 따뜻한 여장 남자 엘리는 욕망에 파묻혀 길을 잃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같은 영화들을 연상시킨다. 남자이면서 동시에 여자인 엘리는 서로에게만 맞춰진 두 사람의 시선을 흩뜨릴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룰루와 파블로는 엘리를 소외시킨 채 둘만의 정사에 몰두한다. 열정적이지만 단순한 이 정사는 더 이상 흥미를 주지 못한다. 파블로가 룰루의 눈을 가린 채 다른 남자를 불러 들이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파블로가 이런 행위를 시도한 것은 욕망을 확장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룰루를 향한 욕구를 더욱 깊이 파기 위해서다. 화가 난 룰루는 집을 나가 다른 남자들을 찾지만 그녀가 마주치는 것은 폭력 뿐이다. 결국 파블로만한 남자는 세상에 다시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결말은 너무 황량하다.
이 매혹적인 까닭은 내밀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기 때문이다. 관객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은 무의식적인 도덕의 저항을 무너뜨리는 작품이었다. 달콤한 역시 통념을 깨고 균형 잡힌 삼각형을 이루는 두 남자와 한 여자 때문에 행복한 영화였다. 그러나 는 파멸까지 치닫지 못하며 만족스러운 결합을 얻지도 못한다. 비가스 루나의 영화가 모두 그물처럼 얽힌 을 닮아야 할 필요는 없다. 관성에 빠진 섹스를 극복하려는 룰루와 파블로의 노력도 가상하다. 하지만 비디오를 굳이 극장에 가서까지 보아야 할까?
김현정(parady@film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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